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세계란 노동이 예술의 차원에 달하는 것이라는 말 말고는 ‘문화운동’에 대해 별로 논하지 않았다. 그의 문체가 문학적 향취를 뿜었을 뿐이다. 엥겔스도 별로 논하지 않았다. 그의 문체가 시적 응축에 달하면서 간혹 논리 비약을 범할 뿐이다.
오늘날 문화운동이 정치에 너무 좌지우지되는 현상은 문학이 공무원 자질시험(과거)의 주요 과목이었던 조선시대 유물이기도 하고 가깝게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문화운동에 그대로 적용한 80년대 민중문화 운동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렇게, 문화운동의 취약점은 정작 문화정책의 결여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도 나온다. 87년쯤인가, 당시 수배 중이던 임홍배(서울대 교수)에게 특별부탁하여 동독 문화정책 관련 서적을 빌려본 일이있는데, 문화정책(혹은 운동)은 freizeit-gestaltung(자유시간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이 관건이라는 말에, 파업용 노래를 만드는 것보다는 자유시간에 음미할 거리를 만드는 게 더 어렵고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물론 이것만 해도 당시로서는 신기한 깨달음이었다) 다른 소득은 없었다.
심광현은 여러 단체 여러 직을 거쳤으나 무엇보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좌파의 문화운동 행로를 모색하고 스스로 개척해왔던 잡지 <문화과학> 편집인이고 창의력을 중시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이다. 그리고, 이 책은 15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근대 노동사회에서 탈근대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이론과 실천 전략을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원대하게 펼치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론의 높이와 실천의 깊이의 ‘절합도’다. 알튀세르, 들뢰즈/가타리/네그리는 물론, 칼 폴라니, 페르낭 브로델, 앙드레 고르 제레미 레프킨, 스텐리 아로노비츠 등 일반인이 범접하지 힘든 이론들과 환경운동, 참여연대, 93대전엑스포, 95광주비엔날레, 95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96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김영삼 정부의 문화정책, 규제정책과 진흥정책, 이런 사항들이 한 책에 혼재한 것을 본 적도 드물지만, 이렇게 예리하게 어우러져 높이가 깊이를 심화하고 깊이와 높이를 대중화하는 장관은 본 적이 없다.
이론은 실천으로 검증될 뿐 아니라 심화하고 실천은 이론으로 종합될 뿐 아니라 전망의 육(肉)을 이룬다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명제가 새천년 세대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나이로 보나(45살), 실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이런 사람이 문화부 장관 되면 딱인데, 거 참…. .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