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1983년,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를 타고 그 녀석이 우리 동네로 이사오던 날. 머리카락 두 줄기만 솟아난 민대머리에 가로로 찢어진 큰 눈, 딱 보기에 심술궂어 보이는데다가 이름까지 악동이라니. 그런데 우리에게 놀라웠던 건 그 녀석이 말썽쟁이 만화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아니었다. 그 이전 우리를 즐겁게 했던 길창덕의 <꺼벙이>도, 박수동의 도 부모와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모범생들은 아니었다. 이 속깊은 말썽쟁이가 진짜 새로워 보였던 것은, 그 천진난만한 소동의 뒤끝을 빗질하면서 어린 우리에게 이 세상에는 참으로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 만화 근처에는 서늘한 진실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
독재정권에 대한 명료한 은유
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의 전성기에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악동이>가 최근 복간되어 나왔다.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등에 이어 바다그림판의 바다 어린이만화 시리즈로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 만화사 최고의 리얼리스트면서 가장 숙련된 개성의 필체를 가진 만화가 이희재의 <악동이>는 분명 당시 어린이 만화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독재정권의 폭압, 심의단체의 만화가 억압 등 어두운 시대정서 속에서 꼬마주인공을 통해 펼쳐지는 시대의 은유는 철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도 깊은 서정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악동이가 이사 오게 된 마을은 힘센 골목대장 왕남이가 아이들을 지배하는 곳, 왕남이는 간신배 서림이와 더불어 아이들에게 세금을 뜯으며 작은 폭군 행세를 하고 있다. 키 크고 무술깨나 한다는 장남이가 나타나 녀석을 응징해주는가 했더니, 그마저 한편이 되어 아이들을 더욱 못살게군다.
악동이가 이사오게 된 마을은 힘센 골목대장 왕남이가 아이들을 지배하는 곳. 여기에 등장한 땅꼬마 악동이는 단단한 박치기로 왕남이를 물리친다. 당시 독재정권에 대한 가슴 뜨끔한 은유다.
정녕 우리에게 희망은 없단 말인가? 드디어 여기에 등장한 땅꼬마 악동이, 십여명이 달려들어도 거리낌없이 제 갈 길을 가더니 단단한 박치기로 왕남이를 물리친다. 지금 다시 보니 괜히 가슴이 뜨끔해질 정도로 당시 독재정권에 대한 명료한 은유가 느껴진다. 이후에도 장가 못 가는 시골 삼촌, 가난한 신문팔이 소년 순기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악동이의 관심과 애정은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차원의 만화, 악동이의 캐릭터
<악동이>와 그 창작자 이희재의 훌륭함은 그 주제의 명료함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악동이>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당시 강한 지배력을 형성하고 있던 명랑만화라는 틀 속에서 혼란스러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6화 ‘순기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코가 커지는 리모컨은 <도라에몽> 혹은 <도깨비 감투>류의 만화에서 등장하는 초능력 아이템에 속하는 것으로 <악동이>의 세계관과는 좀 어긋나 보인다. 오히려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악동이>를 만들어낸 그 형식의 훌륭함이다. <악동이>는 정말로 그 이전 한국 만화에서는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차원의 만화를 그려내면서 놀랍도록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이전의 명랑만화에서 박수동의 자유로운 선이 가진 가치는 매우 크다. 비록 그의 개성이 너무 강해 후배 만화가의 전범이 되기에 힘든 점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박수동은 인물과 그 동작의 형상화에서 만화가 그려낼 수 있는 자유를 풍부하게 보여주었다. 이희재 역시 정형의 명랑만화와는 분명히 거리를 둔 떨리는 듯 부드러운 선으로 인물들을 그려낸다. 탄탄한 데생을 바탕으로 묘사되는 인물 하나하나의 매력은 눈부시다. 노트 위에 낙서를 하면서 먹다 흘린 하드와 침으로 범벅을 만들어놓은 악동이의 눈을 보라. 가늘게 옆으로 흘긴 큰 눈 속에 악마성과 천진함이 뒤섞여 있다. 두툼한 입술과 구부정한 등의 서림, 곱슬머리에 체크무늬 바지를 입은 용필이 등 조연들을 보는 재미도 심심치 않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분명한 연기력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악동이가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학교에서 짝을 잃게 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몇 장면에서 벌어지는 만화 속 캐릭터의 연기는 다양하고 실감난다.
이희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주인공들이 뛰어노는 만화의 칸들을 분명한 미학적 시선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에 이르러 우리 만화의 칸이 단순히 행동과 행동을 나누는 시간적 단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미학적 단위가 되었다. 악동이가 이삿짐을 잔뜩 들고 비스듬한 벽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서는 장면의 분방함은 그 물건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긴 장면의 리듬감으로 이어진다. 악동이가 친구들과 함께 병아리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장면이나 십수명의 아이들을 질질 끌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라. 비스듬한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군중신의 입체감은 그 활력을 두배 세배로 늘려 보여준다. 중간중간 칸의 외곽을 없애 긴장을 해소해주는 구성도 그의 그림체와 아주 잘 어울린다.
<악동이>는 1980년대 후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만화상 선정을 받지만 그 수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우리의 일그러지지 않는 영웅, <악동이>는 1998년에는 우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