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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하위문화,<품행제로> O.S.T
2003-01-23

성기완의 영화음악

197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80년대 중반까지의 중고등학교를 틀지우는 가장 공식적인 문화는 역시 군사문화였다. 당시 청소년의 하위문화는 군사문화의 혹독한 억압을 곳곳에서 틈틈이 피하면서 형성되었다. 꿈속에서는 간첩이 등장하고 학교에서는 화생방 훈련을 받는 이 시절의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군사문화의 억압을 견뎌내면서 택한 갖가지 ‘비행’들은 어쩌면 정신적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품행제로>는 주로 청소년 하위문화의 입장에서 공식적인 문화를 바라보고 그 사이의 관계를 추억하는 영화라는 점이 특이하다. 하위문화의 ‘추억’에 기대는 복고적 성향의 이같은 영화는 우선 복고적 시선에 걸맞은 디테일의 목록을 상세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목록 자체가 문제의식의 내용을 구성한다. 이 영화 역시 다양한 디테일들로 우리의 마음을 옛 시절로 데려가고 있다. 음악의 전반적인 기조는 힙합이다. 물론 1980년대의 한국이 힙합시대는 아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해질 무렵 애국가가 나오면서 거행되는 ‘국기강하식’ 때면 운동장에 멈춰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시절에 힙합은 남의 나라에서 온 낯선 소문쯤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DJ DOC의 이하늘이 만든 경쾌하고 날씬한, 정곡을 찌르는 듯한 힙합리듬을 대들보로 하여 짜여진 오리지널 스코어는 ‘청소년 하위문화’라는 코드에 적절히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음악의 사용은 현재의 시각을 1980년대의 청소년문화에 투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추억하는 영화라 해서 무조건 당시의 음악만을 가지고 만드는 것은 일종의 ‘안전빵’일 수 있다. 그보다는 이같은 과감한 시대착오라 할까, 이런 것들이 오히려 영화를 실감나게 하고 과거의 사실들을 현재로 끌어오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다. DJ DOC나 이하늘의 악동 같은 이미지가 음악 속에 너울거린다. 그럼으로써 ‘품행제로’라는 제목에 걸맞은 어떤 하위문화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추억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한 리얼한 접근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나이트나 롤러장 같은 데서 나오는 음악들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할 만한 것들이었다. 김승진과 박혜성이라는 1980년대형 아이돌 스타들도 재미난 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한때 여고생들을 둘로 편가른 이 두 가수의 노래는 영화 속에서 각기 중필(류승범)을 좋아하는 두 여고생, 공효진과 임은경을 상징하는 재료로 쓰인다.

김승진과 박혜성이 80년대적인 것이라면 레코드 가게와 기타 교습소는 약간은 1970년대적인 테마다. 이른바 ‘빽판’(해적판)에 관한 이야기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하위문화의 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빽판을 팔던 세운상가는 이른바 ‘섹스책’을 팔던 곳이기도 하다. 이 둘을 팔던 세운상가는 근대화가 마구잡이로 진행되던 시기의 한국적 ‘불법복제’의 메카다. 중필과 함께 빽판을 사러간 민희는 해적판을 고르다가 프린스의 <퍼플 레인> 음반을 집어든다. 그러면서 ‘어 금지곡들이 다 들어 있네’하고 말한다. 이 대사는 당시 빽판이 가지고 있던 하위문화적 의미를 짚어낸다. 이 영화는 이처럼 통기타 시대인 1970년대와 디스코와 뉴웨이브의 시대인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힙합을 의도적으로 혼합하면서 유쾌한 시대착오를 만들어내고 있다. 청소년 하위문화의 ‘통사’(通史)를 연대순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시대착오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흘러오고 있는 청소년 하위문화의 어떤 흐름에 관한 맥을 짚고 있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