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O.S.T/ 유니버설 발매
내 기억으로는 1980년 대학가요제의 은상이 두팀이었다. 한팀이 마그마, 그들은 <해야>를 들고 나왔고, 다른 한팀은 샤프, 이 팀은 <연극이 끝난후>라는 음악을 들고 나왔다. 금상은 <해안선>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코러스 그룹이 탔는데, 나는 이 은상 두팀의 음악을 훨씬 좋아했다. 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가물가물하다. 1980년인지 1979년인지 잘 모르겠다. 1979년이면 중학교 1학년 때, 1980년이면 2학년 때인데. 아무튼지간에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그 두 밴드의 노래를 엄청나게 좋아했다는 것이다. 마그마의 <해야>를 통해 나는 최초로 록적인 파워 코드를 배웠고 샤프의 노래에서는 처음으로 메이저 세븐 코드를 배웠다. 샤프는 내가 접한, 재즈적인 느낌이 나는 첫 한국 록이었다. 샤프의 노래는 당시의 대학가요들 중에서 특별한 것이었다. 노래책에 적혀 있는 어려운 코드들은 만일 코드 이름 옆에 통통하게 그려져 있는 손가락과 기타 프렛, 그리고 까만 점으로 표시되는 손가락 위치가 아니었다면 흉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 아마 1980년이 맞을 것 같다. 내가 기타를 처음 치기 시작한 게 중2 가을 정도부터였고, 무슨 이유 때문엔가 그렇게도 졸라서 산 통기타를 구석에다 처박아 놓았다가 다시 잡은 것이 그해 겨울방학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통기타를 치기 시작한 게 중2에서 중3 올라가던 그 겨울방학이었고, 샤프의 <연극이 끝난후>의 코드를 아직 굳은살이 박히지 않은 손가락이 얼얼해지도록 연습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친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연극이 끝난후>였다. 영화 속에서는 재녹음된 사운드가 나오고 O.S.T에서는 옛날 노래를 약간 이펙터만 걸어서 다시 쓰고 있다(중간에 한번 노래가 튄다. 왜지?). 만일 그 당시 <연극이 끝난후>를 영화 속에서처럼 똑같이 할 줄 아는 그룹 사운드가, 그것도 여성 7인조 그룹 사운드가 우리 동네에 있는 여고의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나는 완전히 반했을 것이다. 진짜 펜더 기타를 영화 속에서처럼 들고 무대에 올라간 여자애들을 나는 얼마나 우러러보았을까. 그렇게 매력적인 보컬리스트가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면 또 얼마나 전율에 시달렸을까. 그 아이와 나중에 영화 속에서처럼 그렇게 키스를 나누었다면 난….
그만하자. 이 영화는 64년생들 이야기니까 내가 중1 때 중3 형들 이야기이다. 옛날 생각을 하다보니 한없는 우물에 빠지는 것처럼 헤어나올 수 없이 자꾸 그리로 빠지게 된다. 그런데 <친구>는 확실히 그렇게 빠져드는 것만은 잘 막은 영화 같아 보인다. 그 다음이 어떻게 전개되든, 그 대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거기서 빨리 빠져나온 건 분명히 영화적인 어떤 힘, 내공의 결과이다. 압축적으로 보여주다보니 그 시절의 풍경들은 곳곳에 숨어 있고 겹쳐져 있다. <`Bad Case of Loving You`>가 나올 때, 육교를 뛰어올라가기 직전 섞이는 칼 가는 소리. 롤라장(롤러 스케이트장)만 빼면(글쎄, 부산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서울에서는 우리보다 한 3년 어린애들이 놀 때부터 롤라장이 나왔다), 고증도 정확해 보인다. <`Come Back`> <`Call Me`>, O.S.T 앨범에서 그 두 노래가 빠져 있는 것은 조금 아쉽다.
영화 사운드트랙은, 그 시절의 노래들과 <러브 레터>의 감상적인 피아노와 엔니오 모리코네를 흉내낸 역시 감상적인 스트링 선율이 미디 악기들 동원해서 만든 테크노풍 록과 섞여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그 ‘현재형’의 영화음악과 과거를 보여주는 음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회고하고서 거의 현재 근처로 빠져 나온 뒤, 뒤로 갈수록 이 영화 속에서의 회고가 현재에 관하여 던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음악도 그와 비슷하다. 음악은 옛 시절과 지금 사이의 음악적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이 잘 안 보인다. 90년대 주변으로 오면서 그저 흐지부지되고 만다.
성기완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