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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아닌 ‘인간’을 찾아서
2001-04-19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M.노엘`>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이 있다. 그리고 범인을 밝혀내는 형사와 탐정들이 있다. 추리물은 이 두 가지 요소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추리물의 매력은 살인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의 무게에서부터 시작된다. 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가 혹은 빼앗겨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싸구려 추리물과

걸작 추리물의 핵심적인 차이는 ‘살인’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명탐정 코난>, ‘인간’이 빠진 추리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추리물은 늘 주변부의 장르에 불과했다. 명탐정 코난 도일과 그의 제자 와트슨, 괴도

루팡 같은 주인공들도 고작 어린이용 다이제스트판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산 추리물로 따위의 반공드라마

정도를 거론할 수 있을까? 만화의 경우도 추리물은 늘 비주류였다. 수십년 만화의 역사 속에서 기억나는 추리물로는 방영진의 <탐정 약동이>,

방학기의 <사라진 낡은 집의 비밀> <태양을 삼킨 소년>, 고유성의 <고박사의 탐정소동> 정도를 어렵게

꼽을 수 있다.

90년대 후반 열악한 추리물 시장에 가나리 요자부로, 사토 후미야의 <소년탐정 김전일>과 아오야마 고쇼의 <명탐정 코난>이

연이어 상륙해 인기몰이에 나섰다. <소년탐정 김전일>은 주로 밀실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을 다룬 작품이다. 연속 살인이 벌어지고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는 순간 “범인은 바로 너!”라는 김전일의 지목과 함께 문제가 해결된다. <명탐정 코난>은 고등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변해버린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만화로 전통적인 추리의 잔재미를 강조한 작품이다. 이 두 만화는 추리만화의 재미를 새롭게 일깨워준 작품이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를 추리의 소모품으로 사용해 인간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가해자, 피해자와의 감정적 교류

이들 만화와 비교하면 한혜연의 에는 인간의 모습이 존재한다. <사미인곡>이라는 개그만화로

데뷔한 한혜연은 현실 같은 환상, 환상 같은 현실을 그린 연작 시리즈와 지극히 일상적인 감정의 흐름에 충실한

<금지된 사랑>으로 여성만화의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한혜연은 각각 다른 작품에서 다룬 환상과 일상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범죄를 선택했다. 범죄는 일상에서 발생하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순간 평범한 일상과 분리되는 묘한 성격을 지닌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서

발생하는 어이없는 미스터리, 상이한 두 요소를 하나의 출발선에 정렬한 뒤 작가는 인간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M. 노엘`>은 강력계 형사인 발렌타인 노엘을 주인공으로 살인 사건들이 배치되고, 그 사건의 범인과 그 범인을 잡아내는 노엘의

감정적 교차가 미스터리 추리물의 틀 속에 투사된다.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사건’과만 연관을 맺고 가해자, 피해자와 감정적 교류를 하지 않는 데 비해 ‘노엘’은 때론 범죄자를 이해하고 범죄를 묵인하기도 한다.

노엘은 위암 말기의 환자가 가족을 위해 살인 사건을 모방해 자살한, 보험을 타기 위한 자살사건의 수사를 타살로 종결시킨다.

다른 형사물이나 추리물처럼 <`M. 노엘`>도 관습적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했는데, 노엘은 하드보일드의 형사들처럼 냉혹하지

못하고 추리물의 탐정들처럼 치밀하지도 않다. 대신 다른 탐정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사건의 이면을 넘나들며 스스로 사건에 개입한다. 그리고

자신도 가해자나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다양한 장르, 색깔있는 패턴

에는 다양한 장르의 특성이 교차한다. 형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큰 틀을 제시하고 그 안에는 미스터리,

추리, 엽기적 살인 사건 등 다양한 장르의 특성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소크라테스-너 자신을 알라>는 전통적 추리물,

<`Self Service`>는 할리우드영화에서 소재로 자주 사용하는 멜로 미스터리물, <조각그림 맞추기>는 시체 애호증에

토막살인까지 등장하는 엽기적 추리물이다. <`Memory`>는 엽기적 살인에 생물학 이론 그리고 구 소련의 음모적 과학실험까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산타클로스는 죽어야한다!>에는 남은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살인 사건을 위장한 가슴 아픈 사연이 존재한다. <표절>에는

음악에 빼어난 재능을 보인 ‘월리엄 증후군’이라는 특수한 장애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M. 노엘`>에 등장하는 범죄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며 결국 자기 덫에 빠진 <소년탐정 김전일>과 비교한다면 칭찬할 만한 미덕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딱딱한 표정이나 어색한 동세는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와 빼어난 연출 역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신인 배우의 연기를 보는 느낌이다.

풍부한 표정이 살아 있다면 독자들은 더 큰 감흥을 받게 될 것이다.

박인하 |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