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 감독은 미국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인 중 한 사람이다. 오히려 메시지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이념적’ 바탕은 그의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의 우선적인 타깃은 1960년대다. <플래툰>이 1960년대의 미국과 제3세계와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다뤘고 가 미국 정치판의 추문을 다뤘다면 <도어즈>는 자신을 배출한 1960년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세 작품을 올리버 스톤의 ‘60년대 3부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도어즈>는 물론 전설적인 록밴드 도어즈의 생성과 소멸을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다룬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짐 모리슨이라는 인물이 있다. 짐 모리슨은 밥 딜런과 더불어 록음악을 정통 문학사에 등장하는 시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둘 모두 프랑스의 시인 랭보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다. 짐 모리슨은 사이키델릭한 환각체험을 ‘삶을 바꾼다’(changer la vie)라는 랭보적 테마와 연결시킨다. 짐 모리슨의 몽환적인 록음악은 물론 기본적으로는 블루스에 기초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의도적 감각의 혼돈과 그 결과로서 주어지는 탈부르주아적 생활양식이라는 랭보의 도식을 거의 모방하다시피 그대로 따오고 있다. 그래서 도어즈의 음악은 음악적으로보다는 어떤 태도로서, 말하자면 ‘라이프 스타일’로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사실 도어즈의 음악 자체가 많이 독창적이지는 않다. 레이 만자렉의 키보드가 독창적이라면 조금 독창적일까.
올리버 스톤이 주목하는 것 중 중요한 하나는 1960년대의 히피들과 상업문화 기획자의 관계이다. 도어즈의 매니저가 도어즈를 주류 상업문화판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매우 면밀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상업문화판이 도어즈의 음악을 착취하게 된다는 것이 올리버 스톤의 생각이다. 도어즈의 영원한 히트작 <나의 불을 질러>(Light My Fire)가 TV 광고용 음악으로 번안, 편곡되는 장면은 그 착취의 가장 극적인 대목을 보여준다. 어쨌든 올리버 스톤이 바라본 1960년대의 히피문화는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워홀을 중심으로 하는 뉴욕쪽 히피문화에 대한 비꼼도 재미난 대목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낳은 뉴욕의 사이키델릭 신에 대한 올리버 스톤의 태도는 경멸적이기까지 하다.
이 영화는 음악영화의 한 사례가 되기도 한다. 올리버 스톤은 늘 리얼리즘적 표현 방식을 쓰는데, 이 영화 역시 거의 다큐멘터리적 수법을 쓰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면밀히 1960년대 캘리포니아의 삶의 모습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가능한 한 리얼하게 1960년대 후반의 공연장면을 화면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그 유명한 필모어 극장의 장면이 나오고 1960년대의 녹음 스튜디오가 재현되는가 하면 방송국에서의 촬영장면 같은 것도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진다. 그 모든 환경들이 당시의 음악들이 생성되고 유통되어 대중에게 접근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음악영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삶의 총체적 모습을 카메라 안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올리버 스톤의 진지함 아니면 성사되기 힘든 방식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짐 모리슨은 한 사람의 시인이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방식으로 쓰레기 같은 미국 문화판을 살아가려던 ‘스트레이트한’ 한 사람의 시인이 바로 짐 모리슨이다. 세상과 결별하면서 세상의 핵심을 깨우쳐주는 시인, 사막에 사는 무당으로서의 시인 말이다. 올리버 스톤도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