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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2001-03-29

쾌락의 급소 찾기 27 - 가장 용감한 모험 소년은?

바보는 방황하고, 소년은 모험을 떠난다. 이유는 무엇이라도 좋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서, 겁쟁이라고 놀림받기 싫어서,

아니면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소년과 소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억누를 수 없어 떠난다. 무모해도 좋다. 그럴수록 용기는 더욱 단단하게

별러진다.

지금 소년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제1의 모험세계는 바다인 것 같다. <원피스>(오다 에이치로)와 <풀어헤드 코코>(요네하라 히데유키)의 해적단들이

소년만화의 인기 선두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총몽>의 기시로 유키토도 <수중기사>를 범고래에 태워 보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소년소녀의 모험담 중에서도 바다는 오랜 테마로 존재해왔다. 물론 거기에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같은 19세기 해양모험소설들의 영향이 컸다. 전자는 가이낙스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후자는 데자키 오사무의 <보물섬>과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바다’를 대신해 ‘우주’가 소년들의 모험정신을 부추기는 새로운 세계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항해’라는 속성은 변함이 없다. 소년들은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 되거나,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을 타고 <스타워즈>의 세계를

항해하고 싶어했다. 우주는 그들에게 좀더 넓고 끝없는 바다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저 넓은 우주를 놔두고,

왜 다시 바다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해적 판타지 우주보다 즐거운 바다

<원피스>는 전설의 해적왕 골드 로저가 남긴 보물을 찾아 해적들이 대결하는 시대의 이야기, 악마의 열매를 먹어 고무 인간이

된 소년 루피가 친구들과 함께 해적왕을 꿈꾸며 항해를 떠난다. <풀어헤드 코코>는 역시 해적들의 꿈인 ‘팔콘 전설’을 중심으로, 해적선 ‘스위트

마돈나’를 탄 소년 코코가 용맹하고 정의로운 해적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피스>가 상당히 현대적인 캐릭터와 ‘고고 가제트’식의

발명 아이템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면, <풀어헤드 코코>는 화려한 검술이 주요한 싸움의 수단이 되는 등 정통 해적물에 좀더 가깝다. 그러나

여기에도 거대 괴수와 변신수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상당히 개입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은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같은 정통 해적물에 중세형의 판타지,

그리고 롤플레잉게임적인 요소가 적극적으로 가미되어 있는 21세기형 해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모험을 거치면서 단순히 몸과 마음이

성장해갈 뿐만 아니라, 전투의 결과로 다양한 아이템을 얻게 되고, 적들은 극한의 상상력으로 점점 업그레이드된다.

소년 모험물은 확실히 <땡땡> <마스터 키튼>과 같은 성인 취향의 모험만화와는 다른 색채를 지니고 있다. ‘땡땡’은 10대 소년이지만 기자라는

전문 직업인의 성격이 좀더 두드러지고, ‘키튼’은 확실한 성인 프로페셔널이다. 이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모험을 겪고 때로는 상당한 능력을

발휘하여 그 사건을 해결하지만, 그 능력이 현실성을 벗어나지 않도록 적절히 배려한다. 그리고 가끔은 팀을 이루어서 문제를 해결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으로 남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새로운 능력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소년 모험물의 기초를 만든 것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 그리고 중세 판타지에 기반을 둔 롤플레잉게임이다. <드래곤볼>은

전투에 의한 주인공의 성장, 아이템의 획득, 팀 결성, 적절한 코믹 코드 등 오늘날 소년 모험만화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정형화시켜

놓았다. 90년대를 풍미한 이 스타일은 10년이 지난 지금 상당히 식상한 면모를 지니게 되었지만, 소년세계에 만화보다는 게임이 좀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강력한 만화 코드로 존재한다.

21세기 소년, 온라인으로 모험을 떠나다

엄청나게 성장하는 게임의 영향력은 많은 만화들을 게임 기반의 세계관에 종속되도록 만들고 있다. 판타지만화 <마법진 쿠루쿠루>는

아예 롤플레잉게임의 외형을 그대로 진행시키면서 몇 가지 개그적인 순발력을 더하고 있다. 소년 만화잡지가 대거 게임잡지로 바뀌면서, 게임잡지에

연재되는 만화가 겪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다. <보노보노>의 이가라시 미키오가 게임잡지에 연재하는 <닌자 펭귄> 역시 나름의 독특성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이들 만화는 쉽게 컴퓨터게임으로 전환되었고, <원피스> 역시 만화 속에서

개발된 각종의 아이템들을 컴퓨터게임의 화려한 컬러그래픽으로 즐기도록 해준다.

<눈의 기사 팜팜>(이충호), <소마 신화 전기>(황용수 글, 양경일 그림)와 같은 국내의 소년취향 판타지만화도 기사와 마법이 등장하는

중세 판타지의 세계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거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거기에는 주인공들의 인간관계와 성장의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신비한

아이템과 강력한 마력의 적들이 무시 못할 요소로 존재한다. 가끔은 활극으로서의 액션장면에 좀더 신경을 쓰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것은 ‘게임’과

함께 그 만화가 목표로 삼고 있는 ‘애니메이션’적인 취향을 드러내준다.

21세기의 소년들도 이전 세기의 소년들처럼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그 모험은 철저하게 게임적이다. 더 큰 싸움을 위해 작은 적과 싸우고

아이템을 획득하라. 그런 점에서 <유희왕>(다카하시 가즈키)은 매우 노골적으로 <포켓 몬스터>적인 카드게임 만화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