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이 잘돼야 애니메이션 잡지 기자도 신나는 법인데, 요즘 애니메이션계를 보자면 쩍쩍 갈라진 가뭄철 논바닥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돈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자칫 잘 돌아가고 있는 작품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다 힘든 건 아니라는 걸 밝히지만, 그래도 업계 전반은 ‘버티기’ 태세에 돌입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자 그대로 하루하루를 눈물겹게 보내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 바로 이때, 다른 곳도 아닌 MBC에서 신작 애니메이션을 방영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예상대로 투자없이 방영만 하는 것이라지만, 게다가 시간대는 터무니없이 빠른 오후 4시30분에서 한치도 변함없다지만, 새로운 국산 작품이 공중파를 탄다는 것은 그래도 반가운 일이다. 9월11일 첫 방영을 시작하는 <쥬라기 원시전>은 에피소드 두편을 13부작으로 묶은 2D애니메이션. 신생 제작사 라온픽처스가 기획한 이 작품은, 게이머라면 짐작했겠지만 위저드소프트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쥬라기 원시전2>를 바탕으로 했다. 괴짜 요정과 웃긴 공룡이 등장하는 모험물이랄까? 쉽게 말해 “전설, 그 이전의 이야기, 쥬라기 시대 요정족들과 별종 공룡들이 신비의 샘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 이야기”다.
어려움에 빠진 종족을 구하고자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일행, 이를 방해하는 악당, 이들이 접하는 다양한 사건과 캐릭터들. 퍽 낯익은 설정이다. 기본 틀은 검증된 것으로 가되, 캐릭터와 사건에서 변별을 두겠다는 의도다. 캐릭터 역시 기존 몬스터물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많다.
이야기는 엘프족이 저주에 걸리면서 시작한다. 마법사 페록스는 대마법사가 위독한 사이에 엘프족 정복을 꾀하지만, 실패하자 엘프족에게 저주를 걸었다. 이에 족장의 딸 니우는 수호령 임프와 함께 부족을 살릴 수 있는 전설의 샘 파포를 찾아 길을 나선다. 도중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르가 합류하고, 일행은 괴짜 할아버지 우불라와 겁쟁이 날프를 만나서 우정을 쌓고 불의 신전에서 첫 번째 신물을 찾아낸다. 일행은 이렇게 신물을 하나씩 획득하면서 전설의 샘에 다가가는 것이다.
위저드소프트사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라온픽처스는 애초 세계시장을 목표로 작품을 기획했다고. 요즘 어느 작품이 안 그렇겠냐마는, 확실히 <쥬라기 원시전>의 그림풍에서 국적을 쉽게 짐작할 수는 없다. 제작 스탭이 외국 작품을 해본 경험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캐릭터가 요정과 공룡인 탓도 있다. 어쨌든 “외국에서 팔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TV 방영 이후에는 애니메이션 원작 게임과 극장용, OVA 제작까지 구상중이다. 상품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체에 치중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캐릭터 역시 상품화를 상당히 고려한 디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쥬라기 원시전>은 전형적인 가족형 오락물처럼 보인다. 적당한 재미와 유머와 교육적 메시지를 섞어넣은 영양식. 모험과 용기와 사랑이라는 고리타분한 주제를 이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뚜껑이 열리고 방영이 진행되어야 안다. 다국적 캐릭터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시청자의 눈을 잡아두는 코믹한 재미를 살려낼 것인지 <쥬라기 원시전>이 끌어낼 반응이 궁금하다. 과연 시간대의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누군가의 말대로 “그 작품의 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운에만 맡기기에 현실은 좀 가혹하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