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양 지음/ 한나래 펴냄/ 2만8천원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해 어느 잡지에 글을 썼는데, 원고를 넘기고 난 뒤 편집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화영화란 우리 말을 나두고 왜 애니메이션이란 외국어를 쓰느냐’는 것이었다. 그 잡지는 외국어나 외래어를 배제한 우리말 쓰기로 정평이 났던 매체라서 그런 항의가 일면 타당한 점도 있었지만, 덕분에 2시간 동안 전화를 통해 ‘애니메이션’이란 표현의 당위성에 설명을 해야 했고, 나중에는 원래 원고에 덧붙여 ‘만화영화’란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를 해명하는 글을 써야 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만화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혼동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산업적으로 육성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부 부서의 보고서부터 방송과 신문 같은 매스 미디어에 등장하는 기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질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미학적 가치관에서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오류를 생산하고 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소개한 이론서나 논문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로서, 또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해온 김준양씨가 낸 <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한나래)은 오랫동안 지속돼 온 소모적인 개념 혼란에 분명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의 시각은 명쾌하다. 만화영화는 결코 애니메이션의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관습적으로 써온 여러 명칭 대신 ‘애니메이션 영화’(anmatited film)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 스크린에 비쳐진 ‘이미지’의 운동을 통해 그 운동의 변수 중 하나인 ‘시간’을 관객이 구체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애니메이션 영화’는 그 이미지의 조형적 조건이 ‘라이브-액션 영화’(우리가 흔히 영화라고 부르는)와 다를 뿐,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시각에서 최근 만화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영상 만화’란 용어 역시 개념의 오류에서 온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화란 ‘애니메이션 영화’의 재료 또는 형식에 불과한데 단지 시각적 이미지가 만화적이라는 이유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화의 하부 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라이브-액션 영화’는 ‘사진영화’이고 이는 사진의 하부 장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논박한다.
그가 이처럼 서론에서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서론의 두 번째 장의 제목인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예술 형식의 정체성에 대하여’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준양은 그동안 정보산업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각에서 ‘상품’과 ‘유희’로만 규정되던 ‘애니메이션 영화’를 예술 장르의 하나로써 향유하고 느끼기를 권하고 있다.
그 실천적인 작업으로 김준양은 서론에 이어 7장에 걸쳐 때로는 시각적, 내용적인 형식에 따라 해외 작가들을 구분해 소개하기도 하고, 우리 애니메이션 문화에 긍정적,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별도의 장에 할애해 접근하고 있다. 또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영화’들도 그는 맹목적인 찬사나 비난보다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미학적 관점을 갖고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에서 흔히 애니 마니아로 자처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신 정보와 현란한 미소녀의 자태는 발견할 수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다룬 별도의 장을 마련했지만, 거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나 안노 히데야키 같은 작가주의 상업애니메이션 작가의 이름은 없다.
아울러 애니메이션 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찬양하는 장밋빛 백일몽과 숫자와 도표의 어지러운 나열도 없다. 애당초 처음부터 그는 뚜렷한 실체도 없이 허공에 집을 짓듯 공허한 논의만 계속되는 ‘영상산업의 미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다만 우리가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듯 삶의 소중한 자양분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만약 ‘애니메이션 영화’를 콜라와 햄버거를 먹듯 소비하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살 필요가 없다. 뭐, 그것도 소비자로서 선택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니까.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