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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십자가의 괴이>

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 지음 | 비채 펴냄

2011년 5월, 문경에서 괴이한 시체가 발견된다. 한 남성 시신이 흰 속옷을 입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양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성경 속 예수의 죽음을 재현한 십자가형을 한 시신은 택시 기사를 하던 50대 남성으로 밝혀졌고, 경찰 탐문수사 결과 평소 그가 사이비종교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그의 종교 활동에 대한 증언은 제각각 달랐다. 조사 결과 자살로 마무리되었으나 워낙 엽기적인 데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자세로 시신이 발견되었기에 이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를 다루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가장 괴이한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실존하는 사건과 죽은 이가 있기에 모든 접근이 조심스럽지만, 미스터리 작가들은 여기서 가지를 뻗어 각자의 다른 소설을 완성하기도 한다.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십가가의 괴이>는 여섯명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문경 십자가 사건’을 소재로 서로 다른 상상력을 펼쳐 완성한 소설집이다. 수록작 중 첫 번째 소설 <영감>을 쓴 조영주 작가가 다섯명의 작가에게 제안해 기획된 이 소설들은 사실 ‘십자가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만 공유할 뿐 배경도, 범죄의 양상과 사건 진행 과정도 다 달라 작가의 개성이 더욱 강조되어 온전히 별도의 소설로 읽힌다. 실존하는 사건에서 출발할 때 소설적 상상력은 날개를 펼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여섯명의 작가들은 미스터리라는 틀 안에서 ‘아, 이렇게 전개가 된다고?’ 싶게 사건의 출발을 달리하거나 비밀을 엉뚱한 서랍에 숨겨두어 독자의 허를 찌른다.

폐허와 같은 곳에서 발견된 십자가 시신, 으스스한 방향으로 미스터리를 전개할 것 같지만 이 소설의 기획자이기도 한 조영주 작가는 스스로를 주인공 삼아 글쓰는 이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영감’이 오히려 공포를 주는 존재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박상민 작가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의문의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로 향하는 데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실제 사건은 종교가 얽혀 있을 것으로 수사관들이 해석했지만 의외로 이 소설집의 여섯 소설에는 종교가 등장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세우고 스스로 몸을 묶은 후 죽는다는 설정부터 기독교가 연상되지만, 그렇기에 작가들은 더욱 신에게서 멀어지며, ‘인간적’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인간의 죄, 인간의 죄책감, 인간의 참회, 인간의 구원과 고통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세상의 모든 사건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언제 선한 적이 있었나?”

“뭐, 뭐?”

“인간이 언제 사악하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 <파츠>, 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