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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홀로 중국을 걷다>
이다혜 2024-10-22

이욱연 지음 창비 펴냄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 장아이링은 영화 <색, 계> <붉은 장미 흰 장미>의 원작이 된 소설들을 썼다. 그는 마치 <색, 계>의 이야기처럼 친일파 후란청과 사랑에 빠져 중국을 뒤흔든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이욱연은 <홀로 중국을 걷다>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며 장아이링의 단편소설 <봉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한다. 일본의 공습으로 공습경보가 울리고 일상이 멈춘 순간, 일상의 삶에 억눌린 채 의식의 수면 아래 잠재돼 있던 무의식 세계의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초면인 삼십대 남성과 이십대 여성은 서로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봉쇄가 풀리기 전까지. 짧은 소설 한편이지만 역사와 사회를 두루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 지역별로 풀어가는 책이 바로 <홀로 중국을 걷다>이다. 이 책은 특히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이유로 중국 땅에 살았던 중국의 조선인들 이야기를 자세하게 서술하는데, 소설가 박완서, 문학평론가 김윤식에게 베이징 가이드를 해주며 접한 한국 문인들의 이야기는 책의 초반부터 읽는 이들을 사로잡아 읽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답게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곳곳에 풀어내는데, 중국 여행을 앞둔 이에게도 중국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좋은 읽을거리가 된다.

시안에 얽힌 이야기는 면 요리로 시작해 중국 전통 복장에 대한 화제로, 그리고 김춘추로 이어진다. 신라의 김춘추는 648년 신라 진덕여왕 때(당나라 전성기인 태종 22년) 세계 최고 도시였던 당나라의 도읍 장안을 방문한다. 김춘추는 고구려와 백제에 맞서기 위해서, 신라를 지키기 위해서 당나라에 갔다. “김춘추는 당 태종을 만나 신라인의 옷을 당나라 스타일로 바꾸겠다고 말한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당을 추종하겠다는 의사 표현은 없다. (중략) 우리 역사에서 이런 대규모 중국화는 두번 있었다. 신라 진덕여왕 때와 조선 건국 시기다. 조선 건국 초기의 중국화 모델 국가가 명나라였다면, 신라 때 중국화 모델 국가는 당나라였다.” 여기에 따라붙는 이야기는, 강국에 둘러싸인 오늘날의 한국이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열린 질문이다. 루쉰의 <아큐정전> 이야기를 꺼내면서 ‘정신승리’하는 삶에 대한 해설을 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데도 정신승리법을 자주 사용하면서 현실을 외면할 때, 삶은 파멸로 간다, 아큐처럼.” <홀로 중국을 걷다>는 기행문이기도, 중국 문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 문화에 대한 서설이기도 하다. 묵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읽고 싶은 중국 소설이 많아지게 하는 책이다.

위화는 이 소설(<인생>)이 한 개인의 자기 운명과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이며, 이 우정은 사람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우정이라고 말한다. 운명을 친구 삼아 운명과 우정을 쌓아가면서 사는 삶에 원망이 끼어들 틈은 없다.

‘항저우: 고난을 대하는 한가지 삶의 철학’,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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