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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그레이트 서클1, 2>
이다혜 2024-09-24

매기 십스테드 지음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

돌아보지 않는 법을 아는 캐릭터를 언제나 부러워해왔다. 현실에 주저앉지 않는 법, 실망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라면 얼마든 자기 계발서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만으로 무력감만이 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에 수렴하는 문제인 것만 같아서. <그레이트 서클>은 모든 것이 ‘나’에 수렴한다는 자기 인식으로 세상 끝까지 날아오르는 이야기다. 거침없고 대담하게.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거대하게 상상할 줄 알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는 소설 속 문장을 빌리면 당당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펼쳐지고 또 펼쳐지며, 언제나 끝이 없다. 하나의 선, 하나의 원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앞을 바라본다. 수평선이 있다. 뒤를 본다. 수평선. 지나간 것은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나는 미래에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그레이트 서클’은 구 위에서 그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원을 의미한다. 지구를 기준으로는 북극과 남극을 지나는 경도선과 적도를 뜻하는 표현이다. 해들리는 감독으로 일하는 삼촌과 산다. 부모님이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배우로 데뷔하고도 큰 성과가 없던 해들리는 <대천사>라는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지만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듯 보인다. 해들리는 비행사 메리언 그레이브스의 생애를 영화화한 <페리그린> 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어린 시절 읽은 메리언 그레이브스에 대한 책을 떠올린 해들리는, 이 영화가 자신의 배우 커리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을 직감한다. <그레이트 서클>은 해들리의 삶과 메리언 그레이브스의 삶을 나란히 보여준다. 두 여성이 다른 시대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겹쳐 있는지, 누군가의 눈에는 고난으로 점철됐을 수 있는 삶이 실제로는 얼마나 모험으로 충만했는지를 담아낸다. 작가 매기 십스테드는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뉴질랜드까지 단독비행에 성공한 여자 조종사 진 배튼의 동상을 마주한 뒤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데, 소설을 읽으면 메리언 그레이브스가 실존 인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메리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메리언을 탐구하는 해들리의 마음에 이입하게 된다. 세계대전 중에 비행사의 꿈을 꾸고 실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설을 읽으며 연신 벅차오르는 감각에 취하게 된다.

“가끔은 바람에 몸을 숙여야 해.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이 너무 많거든.” /3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