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든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그것은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우리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몇분 만에 알게 되는 걸까?” 핼은 영국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16살 소년이다. 핼은 어릴 때 TV에서 두 소년이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둘은 아서왕의 돌에 칼을 간 뒤 서로의 손을 긋고 두 피를 섞어 맹세한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단짝 친구야.” 핼은 이때 이후로 언제나 충실하고 서로의 곁을 지켜줄 단짝 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내게도 언젠가 그런 친구가 나타날 거야. 그 경이로운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핼의 앞에 나타난다. 핼이 탄 요트가 폭풍에 휩쓸리자 바다에서 갑자기 나타난 배리가 그를 구해주고 집에 데려가 옷을 갈아입히고 따뜻한 음식을 먹인다. “너는 어디서 나타나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거야”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짧은 시간 핼은 배리와 뜨거운 애정을 나누게 된다. 여름에 만난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고작 7주였다. 16살의 여름, 49일을 함께하고 배리는 죽어버린다.
둘은 한명이 먼저 죽으면 그 무덤 위에서 춤을 추자, 라는 약속을 했었고 핼은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다가 ‘무덤훼손죄’로 고소된다. 소설은 핼이 배리를 만난 시점에서 시작해 경찰에 잡힌 후 보호관찰소에서 면담을 하는 사회복지사의 보고서, 핼이 배리와의 기록을 ‘수정’ ‘리테이크’ ‘액션 리플레이’하는 내용을 오간다. 불꽃처럼 소년을 사로잡은 충동과 서툴지만 확실한 사랑이라는 감정, 갑자기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가 10대 소년의 시선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젊은 시기의 사랑,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것을 잊고 살 것이며 한번도 겪어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핼과 배리는 그것을 가졌다. 왜 그여야만 했을까. “내가 분명히 알았던 건 만나고 또 만나도 부족하다는 것뿐이었다. 언제나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와 함께 있어도 충분치 않았다.”(214쪽)
계산 없이 감정에 충실하고, 우리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의 디테일이 머릿속에서 계속 ‘리플레이’되는 첫사랑의 뜨거운 시절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 책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랑 그 자체의 기록이다. 2007년에 출간됐던 번역본이 지금 시기에 맞게 수정 보완되어 재출간되었으며, 2020년 프랑수아 오종 감독에 의해 영화 <썸머 85>로 제작됐다.
하지만 춤추는 일이 남았어요.
춤을 춰야 해요. 내가 말했다.
춤? 그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무덤 위에서요.
뭐라고!!
/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