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위로 흩날리듯 반짝이는 초록 잎사귀들. 표지를 들여다볼 때마다 창문 너머로 초여름 한낮의 풍경을 내다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책장 넘기는 일이 한결 산뜻해졌다. 하지만 <우리의 여름에게>에서 최지은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리 가볍지 않다. 10살이 채 되기 전부터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의 부재를 차례로 겪으며 느낀 깊은 상실감, 외로움. 시인의 가난과 결핍을 곱게 바라보지 않던 주변 어른들이 남긴 상처에 관한 내밀한 고백들이 책에 빼곡하게 담겼다. 어른이 되어서야 마주한 마음속 어린이의 말에 최지은 시인이 기꺼이 귀를 기울이며 유년의 경험을 복기한 결과다.
최지은 시인은 2017년 창비신인시인상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첫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를 발표한 뒤 3년 만에 첫 산문집 <우리의 여름에게>를 내놓았다. 산문집에서 시인은 가족과 함께 지나온 여름을 글에 끌어들이고, 시집과 마찬가지로 상실의 아픔을 조용히 포용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역으로 대상에 관한 추억을 구체적으로 상기시킨다. 최지은 시인이 들려준 할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그렇다. 오이지를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새벽부터 소금물을 끓이다 크게 다친 할머니의 상흔, 딸의 손톱을 공들여 깎아주던 아버지의 손길, 최지은 시인이 몇달 만에 본가에 들렀을 때 대뜸 “그러면 또 언제 오니?”라던 할머니의 첫인사. 상황 묘사가 디테일해 작가가 가족과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진다. 감정 표현이 솔직한 점도 개별 사건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은 3부에 이르기까지 반복해 언급된다. 때로는 같은 사건 혹은 대사가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지은 시인은 본인이 상실을 딛고 타인을 도우며 살아온 시간들, 현재의 가족 구성원과 삶을 꾸려 안정을 찾게 된 과정도 함께 들려준다. 상처를 묻어두지 않겠다는 노력, 이별을 거듭해 명시하는 행위는 아마도 그에게 치유의 과정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사라지고 나면 완전히 사라질 비밀을 이제 와 고백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갔다. 고심해 골랐을 간결하고 단정한 표현들이 문장을 여러 차례 곱씹고, 문단마다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게 한다.
102쪽왜 이것 없이는 다음 문장으로 건너갈 수 없는 걸까.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나와 같은 누군가가 내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마음을 다해 들려주고 싶다. (…) 했던 이야기라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해도,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 스스로 말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