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미옥의 첫 번째 산문집. 아들 ‘나무’가 태어나 5살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안미옥의 시간과 나란히 두고 기록한 글인데, 성장하는 아이와 함께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배우고, 언제까지고 낯설 세상을 즐겁게 익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재미있고 신기한 것은 알수록 재미있고, 두렵고 무서운 것은 알수록 이해가 되어 무섭지 않게 된다. 요즘 나도 내게서 신기하고 무서운 것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가는 중이다. 나무와 함께하면서, 잊었던 어린 나의 세계를 한번 더 살아보는 것 같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일들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했던 <여름잠>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 사이로, 우는 사람에겐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모르게 더 큰 눈물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던 <여름 끝물>을 연상시키는 시어 사이로, 삶의 여름을 향해 쑥쑥 커가는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풍경은 삶이 되어 구체성을 띤다. 안미옥은 구름을 보며, 비가 올 것처럼 흐리다가 맑게 개기도 하고, 햇볕이 쨍쨍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는 식으로 “미래가 예측과는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런 구름의 모습이 아이를 키우는 일과 닮아 있음에. 그 가능성을 키운다는 일은 햇살 같은 웃음으로만 가득 찼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아기에게 햇빛과 마찬가지로 어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주 생각한다. 아기가 자라는 동안 어둠의 편안함을 알게 하는 것도 내 몫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빛에는 어둠이 녹아 있고, 어둠의 세세한 면모에는 빛보다 밝은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하고. 내면의 밝음과 어두움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하면서. 그렇게 함께 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쓰고 싶다.” 부모가 다 알 수 없는 아이의 세계를 끌어안는 일, 미지의 어둠을 향해 아이가 나아가는 동안 간섭하지 않는 일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이 산문집에는 내가 모르는 신기한 경험이나 생경한 언어는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경이를 체험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아이가 성장하는 나날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열이 오르면 발이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몸이 회복되면 다시 발이 온기를 찾는다는 사실을, 한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발을 만지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 선잠에 뒤척일 때면 아이의 한발을 한손으로 감싸쥐고 다시 잠드는 모습에서 평화를 느끼는 일이 이 독서가 주는 쾌락이다. “무너뜨리는 것을 잘하면 다음이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이어지는 엄마와 아들의 사진은, 이 책의 멋진 마무리다.
211쪽시가 될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떤 문장들을 쓴다. 문장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공을 하게 되지만 내 삶과 무관한 문장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