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의 새 시집이 나왔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이번 시집은 ‘두 사람’으로 시작한다. 문을 여는 시 <어떤 그림>은 미술관의 두 사람이 이 방과 저 방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문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두 사람은 각자 담당하는 공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란히 공간을 옮겨 다녔다// 그림이 그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리고 다음 시(<공원 닫는 시간>)에서 (아마도 같은, 아마도 다른) 이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가는 중이다. “각자 태어난 두 나무가 서로 몸을 끌어 가까워져/ 담을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고/ 서로에게서 솟아난 영감은 서로 엉키고/ 누구도 그들의 엉킴을 풀지 못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모라지만.”
사랑의 말을 듣고 싶을 때 이병률을 찾는 이들을, 이번 시집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코로나19의 풍경을 말할 때도 그렇다. 중국에서 봉쇄당한 경험, 한국에서 봉쇄당하는 꿈, 아이슬란드에서 수영장 봉쇄를 목격한 일 사이로 이런 문장이 흐른다. “사랑이 끝나가듯 과도하게 윤이 나던 생활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감정들은 기를 쓰고 녹아 흘러내렸다/ 참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그 무더움만으로 모두 무섭게 위축되었다.”(<한쪽 날개와 반대쪽 날개>) 그런 식으로 때로는 여행길에 동참하기도 한다. 어딘지 처연함과 웃음기가 묻어나는 <하산>에서는 이불 보따리를 들고 비행기에 탄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막 하산을 했다고 한다. 이불 보따리를 들고 탈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하산을 했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승무원은 “하산을 했더라도 큰 짐은 부쳐야 합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부치고 남은 짐이 이불이라면 부친 것은 그릇일까 도마일까// 짐칸에 이불이 들어가질 않자 청년은 이불을 끌어안고 앉았다// 공부를 다 하고도 가져갈 이불과 세간들이 있다 못해 힘을 내어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공부인가//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얼마나 큰 공부인가.”
이 시는 또 어떠한가. “갑자기 여자가 남자를 껴안았다/ 남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자는 혼자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 여자 품으로 남자가 파고들었다/ 남자는 곧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가만히 생각을 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장미 나무 그늘 아래>) 사랑이라는 말을 가운데 둔 동상이몽, 어긋나는 커뮤니케이션, 그렇게 생겨나는 신비하고도 흥미로운 의미.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속의 유머는 그렇게 작용한다. 사랑은 마음이 꼭 들어맞는 사람들을 위한 해피엔딩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랑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읽힐 시집.
<이삿날> 중에서, 137쪽이사를 해보면
그것도 혼자 다 해야 하는 이사를 해보면
내가 얼마나 망명 중인지를
또 얼마나 거룩해봤자인지를 알게 되지
그전에 살던 집을 지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