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 박상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낭만주의 문학이론을 주도한 철학자이자 작가다. 프랑스혁명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던 때, 슐레겔은 문학계 역시 새로운 문학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했고 그 일환으로 <루친데>를 서술했다. <루친데>는 그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며 다양한 장르와 형식, 요소들이 섞여 있다. 이는 법칙 없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자 하는 낭만주의 문학이론을 실험적으로 체현한 결과다. 책은 총 13개의 텍스트로 구성됐으며 개별 텍스트들은 대체로 편지글의 형태로 알레고리와 농담, 상상, 성찰 등의 주제를 다룬다. 7번째 <남성 수업 시대> 텍스트를 중심으로 앞뒤의 6개 텍스트가 대칭적으로 분리된 구조인데 한 텍스트의 말미와 다음 텍스트의 도입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시간적, 내용적 측면에서의 연결고리가 약한 것이 특징이다. 개별 텍스트의 흐름 자체는 흥미로운 반면 이러한 독특한 구조와 문체로 인해 일반적인 소설의 진행을 떠올리며 책을 펼친 독자에게는 생경한 느낌을 줄 것이다. 내용 면에선 ‘루친데’라는 자유로운 여성상을 중심으로 사랑에 대한 관능적인 묘사, 결혼에 관한 가치의 전복 등을 이야기한 점이 눈에 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젊”되, “사랑의 언어는 예전의 고전적인 풍속대로 자유롭고 대담하기를” 바랐던 그의 의도가 반영된 대목이다. 쏟아질 비난을 예견하면서도 슐레겔은 글 곳곳에서 육체의 감각, 쾌락이 진정한 사랑의 요소라는 도덕관을 주장하길 멈추지 않는다.
1829년 슐레겔이 사망한 뒤 그의 수많은 미발표 원고가 유작으로 발견됐는데 그중 <루친데>에 덧붙이려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단편 5편이 책에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전개한 낭만주의소설에 관한 이론, 실험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좋은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슐레겔의 철학과 <루친데>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더한 역자의 해설도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
22쪽우리는 사랑처럼 영원한데, 왜 우리는 우연히 찾아오는 쓰라린 기분을 멋진 재치나 생동감 있는 일시적인 변화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