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는 누군가를 사회생활에서 만나면 반가울 것이고 마음을 터놓고 싶을 것이다.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능동적 행위의 연속이라, 어느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관계가 갑자기 끝나버릴 수도 있다.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자전거와 세계>의 주인공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한때 친밀했던 동료가 갑자기 냉랭해져 애가 타고, 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가 뭔가 속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직장에서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은근히 경고할 뿐이다. 내 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의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외롭고 애타는 마음은 사그라들고 대신 현실의 이해관계를 빠르게 계산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 것이다. <산무동 320-1번지>의 호수 엄마는, 철거를 앞둔 동네의 건물주 장 선생 대신 발품 팔아가며 월세를 척척 받아낸다. 장 선생이 빌라를 헐값에 전세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동네에 사는 세입자를 잘 구슬리고 타일러가며 돈을 걷는다. 물론 균형이 언제 깨질지는 알 수 없다. 건물은 계속 허물어지고, 세입자들은 점점 대담해진다. 화장실 곰팡이 때문에 옥신각신하다가, 호수 엄마는 밀린 월세 중에서 겨우 5만원을 손에 쥔다. 그렇지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여린 마음이 아예 죽어버린 것은 아니기에, 아니 그런 마음이 있어야 계속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호수 엄마는 되돌아간다.
이 단편집에서 시선을 끄는 존재는 바로 집들의 풍경이다. 특히 오래되고 낡아, 재개발 계획이 세워졌다 엎어지는 동네들. 그런 동네에는 한몫 잡겠다고 집을 사들였다가 한번 삐끗해서 투자에 실패한 사장님과 사모님이 있다. 집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빌라를 샀으나 그 어떤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은 낡은 동네의 주민이 된 <이남터미널>의 주인공은 더이상 ‘누군가를 내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욕망과 이해관계, 그리고 완전히 삭지 않은 여린 마음이 공존한다. 마지막 단편 <축복을 비는 마음>을 읽으면, 착취 없이 홀로서기를 꿈꾸는 빈손의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축복이 있기를 빌게 된다.
131~132쪽“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밀어붙인 건 자라나고 계속 자라나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