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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육교 시네마>
이다혜 2023-10-17

온다 리쿠 지음 / 권영주 옮김 / 비채 펴냄

한 가지 장르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분위기의 소설’을 잘 쓰는 온다 리쿠의 소설집. <육교 시네마>에는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SF, 청춘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드는 18편의 단편이 실렸다. 첫 번째 단편은 호퍼의 그림 <철길 옆 집>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그림은 히치콕의 <사이코>에 등장하는 집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는 “명확히 말해서 이 집에는 출입구가 없다. 완전히 폐쇄된 집. 들어갈 수 없는 집. 나올 수 없는 집이다”라고 그림에 대해 설명한 뒤, 소설 속 화자가 어느 날 그림 속 집을 연상시키는 집과 그 안의 세 사람을 발견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큰 집의 한방에만 늘 모여 있는 닮지 않은 세 사람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단편 <풍경> 역시 그림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주간지의 표지로 쓰인 그림을 보는데, 그 그림에서 어딘지 모를 광기 어린 분위기를 읽어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화자의 헤어스타일리스트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미장원을 그만두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다른 헤어스타일리스트와 대화 중에 화자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오히려 바람이 안 부는 끈적한 여름날 오후,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순간에” 울리는 풍경. 울릴 리 없는 때에 울리는 풍경의 스산한 인상. <측은>이라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저는 고양이입니다. 네, 확실합니다. 이 발바닥 젤리에 걸고 맹세하죠.” 유머러스한 도입부에 이어, 고양이는 그동안 자신이 겪은 동거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인간들에 대한 혼잣말 같은 이야기는 목적 없이 흘러 결말을 향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오마주했다. 묘한 뒷맛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온다 리쿠의 세계에 한층 매혹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권말에는 ‘작가 후기’가 실려 있다. 수록된 단편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인데, 작품을 읽기 전에 읽어도 좋고 읽고 나서 읽어도 독서에 즐거움을 더한다.

300쪽

겁에 질린 얼굴로 불안한 듯 이야기하는데 그게 피상적인 겁니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관계자 전원이 똑같더군요. 은행원도, 이용객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