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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네가 사라진 날>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23-09-19

할런 코벤 지음 / 부선희 옮김 / 비채 펴냄

할런 코벤은 충격적이라 인상적인 오프닝을 쓰는 데 재능이 있다. <네가 사라진 날>의 도입부. 뉴욕 센트럴파크의 스트로베리 필즈의 벤치에 앉은 사이먼은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 자신의 세 아이들인 페이지, 샘, 애니아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던 길이다. 갖은 장난을 치던, 혹은 온갖 상상을 펼쳐내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지켜보던 아내.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의 사이먼은 멀지 않은 곳에서 연주하는 비틀스의 곡을 듣고 있다. 길거리 음악가라기보다는 부랑자나 떠돌이로 보이는 사람이 원곡을 무시하고 부르는 노래. 깡마른 체격에 누더기를 걸친, 더럽고 망가지고 오갈 데 없는 길 잃은 여자가. 이 장면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사이먼의 딸 페이지기도 했다.”

할런 코벤은 <네가 사라진 날>의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죽는 이야기보다 사라지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편이다.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자, 우리를 산산이 깨부술 만한 거대한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던 사이먼의 삶을 추락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딸의 실종이다. 첫째 딸 페이지가 마약에 중독돼 가출한 것이다. 딸의 남자 친구가 살해당하고 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그는 딸을 찾기 위해 나선다. 동시에,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FBI 출신 수사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단서들이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의 쾌감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네가 사라진 날>은 마약중독을 필두로, 맹목적 신앙을 내세워 범죄에까지 가담하는 광신도 집단을 비롯한 현시대의 여러 사회문제를 주인공의 여정에 잔뜩 쌓아놓는다. 때로는 폭력적인 SNS 영상이, 때로는 연쇄 범죄가 현실의 뉴스 화면과 연결되어 서스펜스를 더한다. 할런 코벤은 실망시키는 법이 드물지만 이번 소설은 특히 빨려들듯 읽게 된다. 마지막 주인공의 선택이 주는 서늘하면서도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그 특유의 느낌까지 매력적이다.

476쪽

“잉그리드의 비밀이 뭔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