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지음 / 나비클럽 펴냄
대림동 수정커피호프, 2022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2043년 화성 마오 기지로 옮겨갈 때, 문득 ‘옴니버스 소설인가?’라는 형식에 대한 의문이 둥실 떠오른다. 이내 주인공 이름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동일한 인물들이 다른 시공간에서 겪는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사실 대림동과 화성에서 만나는 ‘씨엔’과 ‘미’의 이름이 서로 달랐을지라도 이들은 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다. 성격과 말투, 계급조차 다르지만 씨엔의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화자가 앞선 대림동의 거친 남성과 같은 사람임을 독자가 예상케 하는 감정의 연결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답답한데 어디로 나가면 좋을까, 이 항변을 어느 광장에 나가 누구와 외치면 좋을까. 뉴스를 볼 때마다 조여드는 갑갑함에 부대끼는 현실 속에서 김형규의 소설은 노동자와 가난한 자,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 인물들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로 부르기보다는 직장인이라 불리길 원하는 세상에서 그의 소설을 참여 소설이라 소개하면 펼치길 주저하는 독자가 있을까 우려다. 계급과 계층 문제를 페이지마다 날렵하게 끼워두었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집을 ‘당신’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시작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당신은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껴안는 소설이다.
매일의 뉴스에서조차 외면하는 사건을, 소설은 인물 속으로 성큼 들어가 누구나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온기와 희망이 있고, 여전히 꿈을 꾸며 성실하게 동료와 가족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운동권의 이야기를 읽는데 답답증이 되레 가라앉는다. 노동변호사로 일했던 작가의 경험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장면에는 현장감이 꿈틀댄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세상이 여전히 바뀔 수 있다고 믿고 계층을 대변해 싸우고 체제에 불응해 자신을 내던지는 개인이 여기에 존재한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순진해 빠져서는, 촌스럽게 진실과 진심 따위를 운운하며 약자들의 연대가, 이 운동이 끝내 이길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다. 김형규의 소설은.
<가리봉의 선한 사람>, 150쪽
우리 이야기로 써줘. 네가 모두를 대표해서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전태일이 죽지 않는 연극이면 좋겠어.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이야? 전태일은 죽었잖아.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 죽는 게 싫어. 연극이니까, 연극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