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세편의 소설을 선정하는 시리즈 <소설 보다>의 가을 2023 버전이 출간됐다. 김지연의 <반려빚>은 빚을 반려동물처럼 여기는 주인공에게서 착안한 제목이다. 반려빚이라니, 처음엔 빛을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정현은 전 애인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포함해 총 1억6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꿈속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도 나간다. 물론 목줄을 쥔 쪽은 반려빚이다. 현실에서도 정현은 종일 돈 생각만 하고, 대출 이자에 허덕이느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사먹지 못한다. 빌려준 돈도 갚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버린 주제에 오랜만에 찾아와 “나 너희 집에서 지낼게”라고 요구하는 서일에게 화조차 내지 않는 정현이 구제 불능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정현에게 빚을 떠안긴 서일 역시 전세 대출 사기의 피해자이기 때문일까. 정현은 빚을 다 갚고 대출금이 0이 되고서야 플러스도 아닌 제로의 상태로 오래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주혜의 <이소 중입니다>는 번역가와 소설과 시인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이름 없이 직업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누군가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 인물에 동질감을 느끼며 그의 행위를 따라가는 여타 소설과 달리 <이소 중입니다>는 돌봄이라는 행동에 집중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거울처럼 현실을 비춘다. 전하영의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40대 후반 비혼 여성 숙희가 주인공이다. 숙희는 30대 중반에 자신이 타인에 의해 ‘중년 여성’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아줌마 혹은 할머니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가진다. 젊은 시절에도 아가씨나 언니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의 연장선이다. 생의 주기를 생물학적 나이로만 상상한다면 삶은 간명해지겠지만, 숙희의 일상은 복잡하고도 개인적이다. 중년 비혼 여성을 무해하거나 귀엽거나 언제든 사용 가능한 노동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숙희는 ‘나의 선택’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증명한다. 전세 대출 사기의 피해 청년, 돌봄과 연대, 중년 비혼 여성…. <소설 보다>는 이번 가을에도 가장 중요한 삶을 소설로 보여준다.
<반려빚>, 14쪽연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좋아했다면 당연히 사고 싶어졌을 텐데 동시에 자신의 통장 잔고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