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성비의 시대다. 각종 플랫폼에서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시간은 부족하다. 빨리 감기로 영화를 보는 걸 넘어 아예 스토리 요약본으로 콘텐츠의 내용을 이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수 있다. 사실 한편의 영화나 한 시즌의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관람하는 건 꽤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만 그렇게 본 내용으로 ‘영화를 보았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축약된 영상들은 별도의 2차 창작물에 가깝다. 축약본으로 스토리를 학습하는 것과 본편으로 전체를 관람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체험이다. 이제 영화는 스크린 바깥으로 나와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구태의연하게 ‘영화가 무엇인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는 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완성도의 영상물이 넘쳐나고, 긴 상영시간으로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으며, 입체영상처럼 더 실감나는 기술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건 무엇일까. 질문을 달리하자. 영화는 어떻게 살아남고 지속될 것인가. 나는 감히 영화가 시간을 버티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시간을 멈추고, 되살리면 관객은 그 시간을 버티고, 목격한다. 그리하여 각자 방식으로 되새김질한 시간은 오직 영화와 나 사이의 유일한 것이 된다. 김호영 교수의 영화 에세이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는 그런 관점에서 영화의 시간들을 리와인드한다.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는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새롭게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 24편의 영화에 대한 고백을 담았다. <씨네21> ‘네오 클래식’ 코너에 연재된 열네편의 글에 열편의 영화 글을 더하여 묶어낸 이 책은 작가의 고백처럼 “영화마다 모두 저마다의 시간과 그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다”. 영화와 저자 사이 유일무이한 만남에 얽힌 고백들을 찬찬히 읽다보면 어느새 고전이 되어버린 지난 20, 30년 사이 영화 목록들을 되새겨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차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