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롤리타>일 것이다. 하지만 나보코프가 자신의 경험을 부은 자전적 소설이며 작가로서의 분신이 등장하는 작품은 <프닌>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 <프닌>은 다소 실험적인 작법의 소설이고, 나보코프가 천착하던 문학적 이론과 미국 사회에 대한 은유, 화자가 여러 번 바뀌는 등의 이유 때문에 소품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모든 소설 캐릭터 중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프닌을 꼽기도 했다. 존경? <프닌>을 읽다 보면 이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외관에 대한 묘사,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영어가 서툴고, 그로 인해 주변인이나 사물들과 싸우는 부분 등은 코믹하게 그려진다. 특히 미국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세계 지식인으로서 체득한(자본주의사회에서는 하나도 쓸모없는) 지식을 고집하는 모습 등은 루쉰의 <아큐정전>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프닌은 연민의 대상임과 동시에 작가의 언급처럼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인정할 수 없는 세계에 적응해야 하지만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는 영원히 망명자다. 구세대 망명자로서 미국 동부의 대학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우습지 않다. 비정한 관계 속에서 여전히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랑과 우정 따위의 진심을 믿는 감성적인 인물은 오직 프닌뿐이다.
<프닌>의 화자는 세번 바뀐다. 주인공 프닌과 화자(나보코프로 연상되는 인물), 작가(전지적 시점). 화자가 바뀔 때마다 당연히 프닌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비웃고 싶었던 프닌의 행동과 고지식한 면모는 뒤로 갈수록 그 인물의 애환으로 느껴지고, 그를 비웃던 독자가 프닌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방식으로 변모한다. <프닌>은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쓴 단편이었고, 이후 연작이 세편 더 연재되었다고 한다. <롤리타>와는 완전히 다른 기법과 소재, 메시지를 가진 소설이지만 무엇보다 <프닌>의 매력은 인물에 대한 뛰어난 묘사에 있다. <롤리타>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가받는 부분이다. <가디언>의 평가대로 <프닌>에서 “나보코프는 거장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그 웃음은 눈물에 이른다”.
90~91쪽
“레르몬토프는.” 프닌은 두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단 두편의 시에서 인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미국 유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행복할 때조차 불가능하고, 지금 나는 이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