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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밑바닥에서>
진영인 2023-02-21

김수련 지음 / 글항아리 펴냄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만 그렇게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구성원이 조용히 희생하고, 때로는 죽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밑바닥에서>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7년간 근무했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대구의 코로나19 중환자실로 파견되어 근무한 김수련 간호사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다. 최근 몇년간 간호사들이 직접 병원 근무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가 자주 나왔는데, 희망을 품은 책이든 냉정한 시선을 보이는 책이든 공통점이 있다면 병원 간호사, 특히 신규 간호사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중환자실은 언제든 갑자기 혈뇨가 나오거나 인공호흡기 서킷이 분리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상황이 다급히 돌아가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릴 수 있다. 시간에 맞춰 투약, 체위 변경, 구강 간호 같은 일 말고도 물품 개수를 확인하고 전산 입력을 하고 보호자와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선배들의 비난이 쏟아지니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저자에게는 ‘밑바닥’이나 다름없었던 이 시간은 우울증과 수면 장애를 남겼다. 수술 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1700원짜리 가위를 찾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헤집기도 했다는 힘든 경험담이나, 이혼하고 재혼 후 회복 불가 상태인 남성 환자가 DNR(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서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직계 보호자인 전처의 자녀들이 서류 작성을 거부했다는 놀라운 사건도 인상적이지만 코로나19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환자들을 살리고자 했던 간호사들은 안전과 인력 충원을 호소했으나 국가도 병원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간호사들은 말없이 그만두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항의해도 윗선에서 들어주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탄압하는 바람에 다들 떠나는 이런 상황은, 사실 간호 업계의 일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저항’이다. 그렇게 공백이 커지면 그제야 일손 구하기 힘들다고 기사가 크게 나지만, 저출생 시대에 빈자리를 메울 사람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현실도 이제는 다들 알고 있다.

10쪽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간호사들이 평균의 다섯배나 되는 병상을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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