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샬란스키는 미래가 아닌 과거가 진정한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이 탐색하는 영역은 자연스럽게 과거가 된다. 과거를 탐색하는 도구는 읽고 쓰기. 쓰는 행위를 통해 상실을 복구할 수 없다 해도,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은 “잊힌 것을 불러내고,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고, 상실을 애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불려나오는 잃어버린 것들은 장소부터 동물까지 다양하다.
쿡 제도의 남쪽에 있는 투아나키라고 불렸던 산호섬(지도에서 지워짐),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과 싸워야 했던 카스피해 호랑이(멸종), 언급된 적이 있는 케리케의 일각수(유니콘의 뼈대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을 믿을 수 있다면), 17세기 초중반에 지어진 빌라 사케티(허물어지다가 폐허가 된 뒤 제거), 무르나우의 첫 영화 <푸른 옷을 입은 소년>(소실 추정), 사포의 시가들(파피루스 해독을 통해 오히려 발견되는 중),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그라이프스발트 항구>(화재로 인한 소실) 등이 언급된다.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에서 유디트 샬란스키는 관련한 전기적 사실들을 간단히 정리해 각 항목의 글머리에 실은 뒤, 본문은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상상의 여지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써내려갔다. 카스피해 호랑이가 피 흘리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풍경을 직접 본 것처럼 상상해내는가 하면, 그라이프스발트 항구까지 이어질 작은 실개천 주변을 걸으며 여러 종의 나무들이 맞이하는 이른 봄 풍경을 꼼꼼히 묘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 필요한 능력은 상상력이다. 챕터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글이어서다. 사라진 세계로. 그렇다. 하나의 작품, 건물, 생명체 등 그 무엇이든 존재하는 동안에는 숱한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유디트 샬란스키가 복원하려는 것은 실제 존재했을지 모를 숱한 목소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