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으면서 <파친코>의 선자가 자꾸 연상됐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일 동포와 조선족, 탈북자의 삶은 자주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이들은 타민족에게 차별당할 뿐 아니라 같은 동포에게도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선 그어진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나’는 중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조선족이다. “한국인이냐”고 묻는 닝에게 나는 “아니죠. 중국이에요. 조선족”이라고 답한다. 앞은 국적, 뒤는 자신이 속한 민족이다. 나는 중국인 닝과 사귀고, 한국인 연주와 교류하면서 자신이 연주보다는 닝과 더 닮았다고 여긴다. 닝은 “넌 두 나라 말을 다 잘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두 나라 언어 중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설 안에서 한국 독자들이 피식할 장면이 있다. 인물들은 자주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데, 마라탕을 ‘얼얼할 정도로 매운 쓰촨성 유명 탕 요리’라고 설명한다. 지금 쓰촨 사람들보다 마라탕을 더 자주 먹는 게 한국인 아니던가. 나는 조선족보다 매운맛을 더 선호하는 연주에게 “너도 참 한국스럽다”며 웃는다. ‘하고많은 중국 요리들 중에서도 유난히 강하고 자극적인 매운맛의 사천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이라는 문장이 뒤잇는다. 한국에서 일하며 조선족이라고 멸시당한 <옥화>의 시숙과 <노마드>의 박철이의 울분은 매우 직접적이다. <옥화>에 등장하는 탈북 여성들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조선족 공동체에서 도움을 받지만 정착하지 않고 한국을 갈망해 떠난다. 아니, 이들이 갈망하는 것은 떠남 그 자체이고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 믿는다. <옥화>의 ‘나’는 자기 가족에게 도움만 받고 몰래 떠나버린 탈북자 옥화의 얼굴에 ‘자기에 대한 굳은 믿음’이 강했던 것을 떠올린다. 금희 작가의 소설은 타자화되고 소외당한 이민자의 삶을 소회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남이 무어라 하든 내 집을 찾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 중국인도, 조선족도, 탈북자도 아닌 그저 나이고 싶은 의지가 거기 있다. 작가는 중국어도, 한국어도 아닌 조선어로 소설을 쓴다. 된소리를 그대로 받아적은 소설 속 단어는 오타가 아니라 조선어다. 이것이 금희의 언어일 것이다.
<옥화>, 82쪽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형네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자신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람이 말이야, 그 상황에 들어가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자기는 안 그럴 것 같지? 흐흐. 아니야. 사람은 다 같애.” 시형의 발랄한 웃음 속에서 홍은 자기편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함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