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이정현)는 지나치게 완벽해 거의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던 남편 만길(김성오)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해 흥신소 소장 닥터 장(양동근)에게 뒷조사를 의뢰한다. 조사 결과를 보니 만길은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희의 목숨을 노리고 있고, 더 알고 봤더니 지구를 정복하러 온 외계인 언브레이커블 집단의 일원이다. 소희는 어쩌다 만난 고등학교 동창 세라(서영희), 양선(이미도)과 반격에 나선다. 하지만 이름값 하는 남편은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다.
신정원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신정원 감독의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쌈마이 영화다. 처음부터 대놓고 유치하려고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유치하다고 지적하는 건 비난이나 욕이 되지 못한다. <점쟁이들>이 나왔던 2012년 이후 신정원의 신작을 기다렸던 관객도 ‘웰메이드’ 어쩌고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신정원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뭔가? 유치함은 아니다. 유치해도 되지만 꼭 그건 아니다. <차우> 같은 영화는 줄거리만 본다면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관객을 웃기기 위해 뭐든지 하는 코미디 감독도 아니다. 신정원의 개성은 셀링 포인트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신정원의 영화에서 신정원스러움은 그냥 그 자체로 있다. <차우>에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정유미와 윤제문이 우유와 빵을 나누어 먹는 장면을 보자.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이 관객의 기대와는 달리 끝없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정상적인 장르영화와는 다른 모양을 갖게 된다. 일반적인 장르영화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구조와 리듬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신정원의 영화에서는 여러 방면에서 이게 은근슬쩍 깨져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럴싸해 보이며 자기만의 생명력을 얻는다. 원래 세상은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무엇이 훌륭한 신정원 영화인가? 당사자인 신정원은 아는가? 우리는 아는가? 신정원은 단 한번도 완벽하게 관객을 설득한 적이 없었다. 나는 <점쟁이들>이 평판보다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시실리 2km>에서는 내가 설득되지 못했다. <차우>는 재미있지만 과연 성공한 영화인가? 재미와 매력을 설명하기 쉽지 않은 스타일을 가진 감독은 어떻게 스스로를 입증해야 할까? 이 스타일이 의도적이긴 한가?
이번 영화는 어떤가? 죽지 않는 외계인 남자와 결혼한 여자 이야기라니, 장항준이 원안과 공동각본을 썼다는 이 이야기는 신정원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놓고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신정원 스타일의 이상적인 이식지는 아니다. 만길은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필요 없는 1950년대 스타일의 외계인 클리셰이고, 뭐든지 가능한 어처구니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저질러도 관객은 별다른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건 신정원이 신정원(그것이 무엇이건)을 해도 관객이 이를 그렇게까지 이상해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정원스러움은 이 영화에도 있다. 언브레이커블의 설정과 관련된 호들갑스러운 코미디는 그리 웃기지 않으며 지나치게 애를 쓰는 티가 난다. 영화가 시체 두 구가 등장하는 침실 코미디가 되었을 때는 훨씬 웃긴데, 이는 이미 무대에서 수백년에 걸친 장르화가 이루어진 영역이라 신정원과 장항준이 이 장르가 세워놓은 훌륭함의 기준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를 죽이려는 소희와 만길 사이의 어정쩡한 긴장감과 친근함은 분명 익숙한 맛이 난다. 이 익숙함은 세 고교 동창인 소희, 세라, 양선의 관계에서도 보인다. 아귀가 딱 맞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그 느낌. 중반을 넘기면 이게 점점 발전되어 신이 나는데, 유감스럽게도 웃기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검은 양복의 정부 요원들이 이들의 앞길을 막는다. 영화가 이들을 사용하는 방식은 잘못된 클라이맥스와 결말의 구축에 대한 반면교사로 쓰여도 된다. 주인공들이 가장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지점을 익명의 지루한 양복쟁이들이 정복하게 내버려둔 건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클리셰로만 남은 영화적 설정
여기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쌈마이 코미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소재와 주제가 얄팍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의 원본이 되는 영화를 끄집어내보기로 하자. 바로 1958년에 진 파울러 주니어가 감독한 <나는 외계에서 온 괴물과 결혼했다>이다. 신정원이나 장항준이 이 영화를 보았을 거란 말이 아니다. 안 보았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장르의 흐름에서 이런 일은 흔하고 여러분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통해 <나는 외계에서 온 괴물과 결혼했다>라는 영화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제목은 낯설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내용도 짐작이 갈 것이다. 장르의 영향이란 이런 것이다. 외계인과 결혼한 여자를 다룬 이 두 영화를 보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외계에서 온 괴물과 결혼했다>는 아이젠하워 시절 미국 백인 중산층 가정의 의미에 대해 꽤 깊이 생각하고 그게 영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하지만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는 그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성공하려면 소희로 대표되는 30대 후반 중산층 기혼 여성의 머릿속으로 최대한 깊이 들어가야 할 텐데,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소희와 같은 사람들의 욕망과 두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 느낌이 든다면 그건 이정현, 서영희, 이미도의 존재감과 연기력 때문이지 각본 때문은 아니다.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여유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순식간에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외계인이라는 단계로 건너뛰기 때문이다. 이것도 충분히 재미있다. (계속 말하겠지만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웃기고 재미있는 영화다.) 아내와 남편이 시치미 뚝 떼고 서로 죽이려 덤비는 이야기가 재미없는 코미디가 되기는 힘들다. 둘 다 쉽게 죽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소희의 고민은 그것뿐인가? 세라와 양선은 어떤가? 남자들에 대한 그들의 입장과 경험은 어떤가? 우리에게 모든 정보가 주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해야 한다.
어차피 만길의 설정은 50년대 SF의 클리셰다.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무언가 더 단단한 삶의 기반이 따라주어야 한다. 만약 만길의 기반이 단단하다면 소희의 고민이 불륜 의혹에서 살해 공포로 점프해도 우린 충분한 극적 스토리를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만길은 그냥 남자들의 부러움에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만길은 예쁜 아내를 두고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하루 종일 남자들이 하는 오락을 하면서 노는데, 에너지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인물을 갖고 한국 이성애자들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곧 밑천이 떨어져버린다. 실제로 후반에 이르면 영화는 만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양복쟁이 정부 요원들이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는 게 그들의 진짜 임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