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는 간결한 제목에서부터 경이로움에 대한 휴머니즘영화임을 부드럽게 폭로하며 시작한다. 헬멧 쓴 장애아동이라는 소재에는 눈물, 감동, 공감의 투사라는 감정적 클리셰가 예견되어 있다. 영화는 뉴욕 중산층 백인으로 구성된 무공해적인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얼핏 보아도 판별이 가능한 도덕적 인물들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관객이 감상주의 혹은 할리우드 당의를 입은 가족영화를 기대했다면 이는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월플라워>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선택
선천적 얼굴 기형을 지니고 태어난 소년 어기는 지적이고 호의적인 가족들과 함께 살아간다. 10살이 되기까지 총 27번의 수술을 받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자신에게 온통 삶을 헌신한 엄마에게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아왔지만 그에게도 드디어 사회로 나아가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영화는 어기가 집 근처 초등학교 5학년으로 입학하게 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안락하고 조화로운 태양계에서 벗어나 낯선 미지의 세계로 발을 떼기 시작하는 순간, 어기는 두려운 마음을 잊기 위해 자신이 있고 싶은 곳을 떠올린다. 그곳은 무중력 상태의 우주다. 피로한 인력도 소모적인 척력도 존재하지 않는 나른한 공간. 하지만 어기는 그 안락한 상상계 속에서 언제까지 안주할 수만은 없다.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는 시나리오작가이자 소설가다. 그는 전작 <월플라워>(2012)에서 사춘기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자신이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월플라워> 역시 고등학교 1학년의 입학 첫날에서 시작한다. 내성적인 주인공 찰리(로건 레먼)는 존재감 없는 월플라워(파티에서 파트너의 선택을 받지 못해 벽에 붙어 서 있는 인기 없는 인물)다. 친구의 자살과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찰리는 심리가 불안할 때 환영을 보는 등 정서적인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본래 원작은 청소년들의 성적취향과 약물남용을 소재로 한 탓에 1990년대 후반 일부 미국 고등학교의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던 베스트셀러였다. 왕따, 동성애, 근친애, 자살, 약물 등 불온한 소재들이 등장하는 원작 소설은 미국 내 도덕주의자들의 비난과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소설로 첫 영화 연출을 맡았던 크보스키는 원작의 위험한 소재들을 부드럽게 재가공했으며, 에마 왓슨, 로건 레먼, 에즈라 밀러 등 10대에게 호응받는 스타 캐스팅을 통해 상업영화와 인디영화의 중간쯤에 해당할 성장영화를 선보였다.
가족이라는 은하에서 개인이라는 행성
영화 <원더>는 <월플라워>의 전략을 어느 정도 충실히 따르는 가족 드라마다. 안면기형을 지닌 소년 어기 역에는 <룸>(2015)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아역배우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나섰다. 아들 어기에게 삶을 헌신한 관대한 엄마 이자벨 역은 줄리아 로버츠가, 유머러스하지만 여린 심성의 아버지 역은 오언 윌슨이 맡았다. 안전한 서사와 스타 캐스팅을 통해 보편적으로 확장 가능한 감성을 창출한다는 전작의 전략은 이 작품에도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 <원더>의 서사 전략은 앞선 작품과는 다소 다르다. 영화 <원더>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감정의 드라마다. 일반적으로 감정의 드라마는 주로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춰 서사를 개발해가는데, 이는 주로 성장의 서사이거나 몰락의 서사다. <원더>의 오프닝 역시 어기를 중심으로 한 성장의 서사를 예견케 한다. 낯설고 불친절한 세계로 첫발을 떼는 소년 어기가 있다. 그런데 영화는 어기에게 집중된 서사의 초점을 바꾸어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분할하는 전략을 취한다.
어기를 중심으로 도는 우주에서 소외되어 있는 누나 비아가 그 첫 번째다. 엄마와 아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어기 때문에 늘 착하고 이해력 많은 누나로 살아가지만 고독 역시 비아에게도 진지한 고민거리다. 이어 어기의 학교 친구 잭 윌이 있다. 처음으로 어기가 마음을 연 친구지만 잭 윌은 어기와의 교우가 교장 선생님의 강요 때문이라고 말하여 어기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영화는 이어 비아의 예전 절친인 미란다로 초점을 옮긴다. 어기의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과정을 같이해온 미란다는, 어기의 가족과 부모의 이혼으로 쓸쓸해진 자신의 가족을 무의식중에 비교하곤 했다. 그리고 거짓말로 친구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 후 그 죄책감으로 비아에게 냉정하게 대한다.
이렇듯 영화는 어기를 시작으로 해 비아, 잭 윌, 미란다 등 주변인물에게 관심을 확장시키며 연령, 계층, 공간을 가로지르는 서사를 중층적으로 진행해간다. 그런데 여기서 관객과 등장인물 사이의 이해의 차이가 발생한다. 배분된 서사를 통해 관객은 인물 각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사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타인의 처지를 속속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즉 감정의 조각들을 꿰맞추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다른 인물이 보인 이상행동의 공백을 상상적 관용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더 큰 우주를 형성해가게 된다. <원더>는 어기를 플롯의 중심에 둔 영화인 한편 각각의 캐릭터도 나름의 궤도를 돌아가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서사적 은하를 이루는 영화다. 각자 자신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규모 유니버스들이 섬세하게 조응하며, 작은 이야기 속에서 인물 각자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소하지만 용기 있는 모험을 결행해야 한다.
마음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의 중첩
<원더>는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고학력의 백인 중산층 가족을 다루고 있으나, 다인종 배역을 통해 설정의 폐쇄성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첫 번째는 어기가 다니는 학교의 담임인 브라운 선생님이다. 그는 월가에서 일하다가 선생이 되기 위해 증권맨을 포기했다. 두 번째는 왕따를 당하는 어기의 친구가 되어주는 여학생 썸머다. 마지막은 외톨이가 된 어기의 누나 비아의 첫 남자친구인 된 저스틴으로, 그는 예술적이며 배려 깊은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은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공감의 배려자로 그곳에 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드라마로 보일 영화가 균형감각을 찾아가게 되는 한편에는 이러한 관계성 확장의 전략이 기여하고 있다.
영화는 개인의 성장 서사에서 출발해 가족, 친구, 공동체로 그 영역을 확장해가며 감정의 생태계를 구성해간다. 마음의 모험을 떠나는 작은 서사들의 중첩은 <원더>를 한 인물에 종속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인물이 공감 가능한 ‘이야기들’의 소우주로 만들어낸다. 악의와 냉소주의의 위험까지 감수하지 않는 <원더>는 안전하고 위생적인 미국적 가족영화의 내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해의 서사가 아니라 각자의 우주를 병행시킨 공감과 조응의 서사로 감상적 클리셰의 진부함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가능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