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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확대하고 젊은 세대로 넘어가려는 의지 분명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이보다 더 정통적일 수 있나

관객에겐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이하 <라스트 제다이>)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라스트 제다이>를 싫어하는 관객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봐도 완벽한 영화는 아니고, 일부러 <스타워즈> 영화의 친숙한 결을 깨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이 시도는 대담하고 창의적이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이하 <제국의 역습>)을 싫어할 권리가 있다. 특히 1편에서 레아/루크를 파던 팬들은 레아가 한 솔로와 엮일 때 하늘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왜 루크가 아니라 한 솔로인 거야? 레아와 루크는 전편에서 뽀뽀도 했잖아! 게다가 신나는 전쟁 이야기를 보러 왔는데 주인공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국에 쫓기기만 하고. 그리고 루크가 다스 베이더의 아들이라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리고 그 중간에 끊긴 결말은 도대체 뭐야? 역시 모두 이해할 만하다. <제국의 역습>의 목표는 애당초 전편을 본 관객의 기대를 최대한 깨부수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마음에 들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영화다.

창작자들은 모두 이 정도의 기백은 있어야 한다. 팬들이 무서워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는 겁쟁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런 기백 때문에 <스타워즈> 프리퀄이 나온 게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기백만으로 모든 게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기백은 일단 있어야 한다.

제다이는 오리지널 3부작 때부터 전멸했다

<제국의 역습>과 마찬가지로 <라스트 제다이>의 기백 뒤에는 치밀하고 당연한 논리가 서 있다. <제국의 역습>의 목표가 천진난만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험담을 그리스 비극과 같은 장중한 드라마로 옮기는 것이었다면, <라스트 제다이>는 지금까지 팬덤의 기둥이었던 베이비부머 중·장년 미국 백인 남성들의 놀이터에서 빠져나와 더 크고 넓고 새롭고, 무엇보다 젊은 세계로 넘어가려고 한다. 이 논리는 타당하다. 할리우드영화는 전세계를 위한 오락이다. 그런데 전세계 인구 중 백인 남성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그중 베이비부머 중년 팬보이들은 몇 퍼센트인가. 이전에야 다들 백인 남자들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이 영화 관객의 의무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대는 저물고 있다. 시리즈가 생명력을 유지하며 살아남으려면 그 이후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심지어 다양성의 확대는 <스타워즈>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기도 하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첫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이하 <새로운 희망>)은 지금 보면 기괴할 정도로 백인 남자 중심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적했고 그들 중에는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도 있었다. 세이건의 비판을 직접 듣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에서 ‘carl sagan star wars’를 검색해보시라. 당시에도 이상하게 느껴졌던 터라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백인 남자들의 영역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선 건 거의 물리학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 흐름이 충분히 빠르지 않았던 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라스트 제다이>에서 백인 남자의 비중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여전히 퍼스트오더에서는 중심세력이다. 당연하지, 이들은 신나치세력이니까. 하지만 저항군에서 중요한 비중의 백인 남자는 포다메론뿐이다. 머나먼 섬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고 있는 루크를 포함하면 둘이다. 이제 모험의 중심은 백인 여성, 아시아계 여성, 흑인 남성에게로 넘어간다. 이건 그냥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그림이다. 이게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모르겠다. 잠재 관객의 인구비율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까? <새로운 희망>의 기괴한 인구비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라스트 제다이>에 신기해하는 건 그 자체로 기괴한 구경거리다. 많은 팬들은 이 영화가 <스타워즈>의 정신을 깨트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영화는 지금까지 다들 당연하게 생각했던 제다이 중심적인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인 루크는 제다이가 없어질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제 모험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엔지니어인 로즈와 스톰트루퍼 탈영병인 핀까지 커버한다. ‘포스에 의해 선택된 자’의 서사는 속편 시리즈에서 점점 더 약해져간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제다이는 이미 오리지널 3부작 때부터 전멸했다.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루크 혼자 포스의 힘으로 고대 종교를 재건했다는 스토리를 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시라. 하지만 루크가 은둔하면서 이 고대 종교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이는 좋은 스토리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종교문학의 애독자라면(나도 한동안은 그중 한 명이었는데) 진짜 괜찮은 종교 이야기는 의심과 절망과 부정 없이는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라스트 제다이>는 제다이의 믿음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하고 있는, 가장 정통적인 <스타워즈> 영화다. 여전히 이 영화가 맘에 안 든다고? 괜찮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라스트 제다이>를 둘러싸고 팬덤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쯤이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다들 ‘로튼토마토 소동’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로튼토마토에서 <라스트 제다이>의 비평가 평점은 92%로 아주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작 관객 평점은 52%밖에 안 된다. 이건 비평가들과 관객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다. 극장에서 나오는 관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네마스코어의 관객 점수는 A였다. 그러니까 대부분 관객은 온라인의 설전과 상관없이 그냥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왔다. 불만이 있는 건 열성적인 소수였다. 그리고 봇들을 돌리고 일회용 계정을 만들어 <라스트 제다이>의 로튼토마토의 관객 평점을 조작한 건 그 소수였다. 심지어 <허핑턴포스트>는 이들 중 한명을 인터뷰했는데,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읽기도 전에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페미니즘이 지나치다. 백인 남자를 바보 취급한다. 아, 그래, 이런 것들이 싫어서 트럼프에 투표했다.

재미없는 이야기다. <라스트 제다이>의 역풍과 관련된 소동 전체가 시시하고 재미없다. 왜 그럴까. 이건 재방송이기 때문이다. 2년 전, 휴고상에서 일어났던 소동이 기억나는가? 정통 SF를 지지한다는 새드 퍼피스라는 남성우월주의 극우 팬덤 무리가 여성작가들이 휴고상을 오염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표를 조직화했다. 그 때문에 수상이 유력시되었던 사라 모넷의 <고블린 엠퍼러>가 장편상에서 떨어지고 류츠신의 <삼체>가 상을 받았다(여자에게 상을 주느니 차라리 중국 남자에게 상을 주겠다는 논리엔 좀 처절한 구석이 있다). 류츠신이 중국 작가 최초 휴고 장편소설상 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고도 떨떠름했던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라스트 제다이>의 평점 조작 이야기는 이 소동의 허름한 복제판이다.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

불만이 있는 건 열성적인 소수였다

휴고상은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고? 휴고상을 장악하려는 새드퍼피스의 발악은 일회성으로 끝났다. 그 뒤 이어진 두번의 시상식에서는 중요 부문상의 대부분을 여성 작가들이 받았고 그들 중엔 흑인과 중국 작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사가 늘 반복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스타워즈 에피소드9>에 대한 예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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