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에서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난처한 문제는 장르가 다룰 수 있는 무대와 소재가 종종 우리가 아는 인간 세계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과학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에 약간의 뻥을 섞으면 SF는 정말 어디든 간다. 우주의 끝이건 시간의 종말이건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딱 하나. 어딜 가도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제외하면. 독자와 관객은 아직 인간뿐인데, 이 인간이란 동물은 자기와 상관이 없는 이야기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 끝에도, 시간 끝에도 어떻게든 인간을 보내야 한다. 아니면 인간과 아주 비슷한 어떤 존재이거나.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 ‘인간’은 백인 남자를 의미했다. 이 장르의 글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백인 남자라고 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지만 모두들 이를 당연시했다. 당연히 우주 어디를 무대로 해도 이 세계는 백인 남자들이 재미있는 모험을 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그 때문에 SF 세상은 이상한 공간이 된다. 어느 별에 가도 주인공은 수상쩍을 정도로 인간처럼 생기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외계인 집단을 만난다. 그들은 야리야리한 옷을 입은 섹시한 외계인 미녀들도 만나는데, 종종 그들 사이에서는 혼혈 2세가 태어난다. 외계 종족 사이에서 혼혈이 나올 가능성은 인간과 버섯 사이에서 2세가 나올 가능성보다 낮은데 말이다.
물론 기초적인 과학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게 잘못되었는지 안다. 하지만 이들은 이 관습을 용인한다. 잘못된 과학이지만 장르 안에서 조금 더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는 것이다. <스타트렉>은 대충 쓴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지만 인간과 벌컨족의 혼혈이 당연한 곳이다.
그래도 시대는 변한다. 여전히 <스타트렉>의 우주엔 외계인 혼혈들이 돌아다니지만(후대 작가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첨가해야 했다) 요새 나오는 SF에서는 20세기 초·중반엔 당연시되었던 비틀린 과학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깊은 생각 없는 대중의 말초적 자극을 위해 쓰여진 장르라는 편견이 한동안 지배해왔지만 최근 쓰인 일급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과학을 그렇게 대충 다루지 않는다. 얼마 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익스팬스> 시리즈를 보라. 다루어지는 물리학과 생물학이 아서 C. 클라크급이다. 장르 주인공들 역시 백인 남성의 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앤 레키의 <사소한> 3부작의 경우, 우린 주인공의 성별을 끝까지 알 수 없으며 무대가 되는 제국의 시민들은 대부분 어두운 피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다들 20세기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델로 보는 <스타워즈> 시리즈도 백인 남성의 비중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백인 남자 영웅이 외계인 공주를 구하는 통속물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대체로는.
백인 남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볼 때 가장 먼저 신경 쓰이는 건 이 시리즈의 보수성이다. 이 세계는 20세기 초·중반 미국 스페이스 오페라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한 곳이다. 과학은 무시되고 인간형,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인형 외계인들이 부글거리며 이들 사이의 혼혈은 당연한 것이고.
원작 만화와 영화는 이런 클리셰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농담이기 때문에 이런 구세대의 사고방식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는 SF 세계보다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판타지 세계에 더 가깝다. 물론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예로 든 건 <반지의 제왕>에 잘못한 것이다. 톨킨은 가운데땅 세계를 자체 논리와 역사에 의해 움직이는 거의 완벽하게 독자적인 세계로 만들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우주는 클리셰의 콜라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딱 한번만 농담으로 쓸 거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시리즈를 만들 거라면 어쩔 수 없이 그 세계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보수성은 조금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에서 백인 남자는 피터 퀼 하나밖에 없다. 말하는 나무에서부터 말하는 라쿤에 이르기까지 종다양성은 거의 <브레멘 음악대> 수준이다. 이 정도면 이들은 요새 다양성의 기준에서 심하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여성 비중이 많이 낮긴 하지만 ‘홍일점’인 가모라는 그 정도면 좋은 캐릭터이고 역시 여성 악당인 네뷸라와의 동적인 관계도 괜찮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인종비, 성비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존재하고,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이들이 관객과 창작자의 고정관념 속에서 어떻게 읽히느냐이다. 예를 들어 로켓이라는 이름의 라쿤 또는 말하는 라쿤처럼 생긴 팀원이 있다. 그는 이 팀에서 소수 인종을 대변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로켓은 판타지나 동화 속의 말하는 인간형 동물류에 속하며 이들은 고정된 선입견 속에서 편리하게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사실 로켓은 라쿤처럼 생겼지만 그냥 백인 남자의 역할인 것이다. 성우부터가 브래들리 쿠퍼가 아닌가. 얼굴에 퍼렁칠을 했다고 욘두가 백인 남자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게 이상하게 들린다면 2편에서 등장한 맨티스와 로켓을 비교해보라. 생김새만 따진다면 맨티스는 로켓보다 훨씬 인간에 가깝다. 당연히 맨티스는 로켓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맨티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이다. 왜? 아시아/유럽계 배우가 캐스팅되어 아시아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과장해서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에서 아시아계 여성은 말하는 라쿤보다 더 외계인이다.
따라서 외모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제대로 된 기준이 되는 건 백인 남자가 쉽게 관계를 맺고 동일시할 수 있느냐다. 그리고 어떤 종족이건 남자라는 것, 백인 남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퀼의 세계 중심에 훨씬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지구인 남자들이 외계인 남자들과 음란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형제애를 다졌던 머레이 라인스터의 <최초의 접촉>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SF 장르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다
이제 전편부터 떡밥을 뿌렸던 ‘스타로드 아빠’ 이야기를 좀 해보자. “내가 네 아비다”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유명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예로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있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는 <스타워즈>보다 더 퇴행적이다. 적어도 스카이워커 가문의 이야기는 인간 아버지와 인간 아들에 대한 것이었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스타로드 아빠는 인간이 아니면서도 가장 미국 백인 남자스러운 커트 러셀의 모습을 취한다. 차라리 필요에 따라 인간 남자의 모습을 취했다고 한다면 말이라도 되겠지만, 이 영화의 설정은 그것도 아니다. 스타로드 아빠는 그 이후로도 계속 커트 러셀의 모습으로 다른 행성들을 누비며 그 다른 행성의 여자들을 유혹하니까. ‘백인 남자의 과대망상증적 자기도취’ 이외엔 이 설정을 정당화할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린 우리의 마음을 우주에 투영한다. SF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SF는 미지에 대한 갈망과 현실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다양함에 대한 추구로 구성된 장르이기도 하다. 아무리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먼 우주로 나간다고 해도 백인 남자의 에고와 그 에고가 춤추는 좁은 놀이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SF 장르에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숨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