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대신 뜨개질>은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에 다니는 세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언젠가 어느 극장 대담 자리에서 만난 이 영화의 감독 박소현은 얼마 전 내게 영화를 보내주며 응원이 될 수 있는 멘트를 부탁했다. 나는 간단한 소감을 메일로 감독에게 보내줬고 감독은 사의를 표했지만 자꾸 이 영화의 어떤 영상들이 떠올라 평을 쓰게 됐다. 이 영화의 세 주인공의 우정, 외부의 충격에 늘 함께하는 건 아니면서도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그들의 우정에 감동받았고 현실적으로는 늘 자기 의지에 반하는 상황을 맞아 패배하는데도 개인들은 굴하지 않고 진화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건전한 자극
앞서 세 여자주인공이 나온다고 했지만 이 영화의 인물 배치 방식은 다소 균형이 맞지 않는다. 영화의 주된 축은 여행사에서 국내여행상품을 개발하는 나나라는 주인공이다(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불린다. 회사의 다른 동료, 상사들도 마찬가지다). 그와 죽이 잘 맞는 주이는 해외여행 담당이고 또 다른 친구인 빽은 여행사에서 교육여행팀 소속인데 야근 대신 뜨개질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지만 어쩐 일인지 화면에는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토요일에 특근을 하다가 출근길 표정이 재미없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자기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야근 대신 뜨개질을 한다. 이들은 영등포역 버스 정류장 부스에 자신들이 뜨개질한 작품들을 전시하기로 계획을 짜면서 들뜨고 행복해한다.
나름 야심적인 프로젝트였으나 이들의 뜨개질 작품 전시는 허망하게 끝난다. 비오는 새벽 감행했던 거사는 짧게 끝났고 다음날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으며 그들의 전시물 근처에는 쓰레기들만 놓여 있다. 공허한 도시의 외관에 자극을 가했지만 그것은 주이의 표현대로 유머 없는 시도로 끝났다. 야근 대신 뜨개질했던 이들의 작업이 해프닝으로 끝난 후 화면은 다시 이들의 직업적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이들은 늘 하던 대로 야근을 하고 있다. 김밥 등의 야식을 먹으며 주이가 하는 말은 이들이 각자의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만큼이나 가족을 비롯한 주변 반응은 그만큼 긍정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해준다. 나나와 주이는 자신들의 일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실제 여행지 현장에서 그들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은 그들의 직업적 자긍심의 일단을 추측하게 해주는데 문제는 이 일의 지속성이다.
주인공들이 일하는 회사는 상하 격식이 없고 구성원들 모두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경영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 회사의 편의대로 임금협상 시기가 미뤄지는 것과 같은 일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깐깐한 성격의 나나는 회사의 간부들과 대립하는데 내친김에 회사에 노조를 설립하려고 한다. 친구들과의 우정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대해서도 우정과 연대감을 갖고 대하려던 나나의 직장 동료들은 나나의 노조 설립 시도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우호적이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는 데는 부정적이다. 심지어 나나의 절친인 주이조차 나나의 추진력을 제어하는 데 간접적으로 일조하기도 한다. 이런 회사 내의 갈등이 다뤄지는 가운데 영화는 세월호 시위 영상을 인터컷하고 그 시위에 대해 어떤 힘을 보탤 수 있을까를 옥상에서 뜨개질하며 의견을 나누는 나나, 조이, 빽의 토론을 기록하기도 한다.
내가 <야근 대신 뜨개질>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런 장면들이다. 주인공 세 사람은 매우 건전하게 논다. 뜨개질을 하며 농담 따먹기를 비롯한 온갖 수다를 떨고 시국에 대해 투명하게 의견을 나눈다. 나나는 어린 시절 본 ‘삐라’에 힌트를 얻어 시위할 때 삐라가 든 풍선을 날리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하고 주이는 청해진 해운 사무장과의 개인적 인연을 들며 모든 사람은 다 연결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한다. 빽은 이런저런 공감의 제스처들이 실은 자기 위로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무력감을 토로하고, 나나는 시위에 나가 어떤 것들을 경험하면 그게 다 자기 경험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이런 말들을 웃으면서 부드럽게 뜨개질을 즐기면서 한다. 각각의 다른 입장 차이를 전제하면서 각자의 어떤 것도 상대를 찌르려고 하지 않고 부드럽게 흡수한다. 대다수 인간들이 술자리에서 무의미한 격론을 벌이며 자기주장을 확인하는 것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않는 것에 비해, 이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서로를 탐색하며 동시에 자극하고, 각자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같이 나눈다.
말랑말랑한 낙관주의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수시로 같이 밥을 먹고 가끔 여행을 다니지만 직업적 고민과 일상적 재미 추구는 따로 나뉘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즐기고 곧잘 고민한다. 가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그렇다고 안 갈 것이냐를 고민하지 않고, 같이 가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겁이 나서 시위에 나가지 않았다고 밀양 송전탑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어느 단체의 사무실에서 고백했던 나나는, 노조 설립이 좌절된 후에 스스럼없이 광화문광장에 나가 뜨개질을 한다. 주이와 빽도 가끔 합류한다. 노조 설립이 좌절된 과정은 화면에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 셋이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뜨개질을 할 때 화면에는 노조 설립에 관한 나나의 생각이 옳았다고 말하는 주이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나나가 주도했던 노조 설립 계획에 다른 두 사람은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언제나처럼 즐겁게 뜨개질을 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런 모습을 다른 영화에서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화면을 통해서는 가장 주장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는 캐릭터로 보이는 나나는 친구들에게 자기주장을 요구하는 법이 없고 따로 떨어져 있어도 다른 친구들의 경험이 궁극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포용력의 소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나의 삶 앞에 놓인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 전개를 놓고 볼 때 나나의 부드러운 맷집은 그만큼 보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경영이 악화된 회사에서 인원 감축안을 발표하자 나나는 회사를 그만둔다. 주이도 그만두고 처음 등장할 때부터 퇴사 예정이라고 했던 빽도 마찬가지다.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누군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야근을 밥 먹듯 했던 이들은 회사로부터 배신당했다. 배신의 주체는 분명하지 않다. 그들이 변이나 날개라고 부르는 회사 간부들에게도 그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비치지 않는다. 회사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했지만 이익을 내야 하고 확장을 끊임없이 꾀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아리처럼 운영하며 일할 거면 왜 회사를 경영하겠느냐고 회사의 대표는 나나와의 면담 자리에서 말한다.
면담 자리에서 또박또박 간부에게 자초지종을 따지던 나나는 면담을 마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데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멀리서 조심스럽게 찍고 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나나는 비오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관계자들과 함께 뜨개질을 하고 있다. 화면에는 동료들이 자극이자 모험이라고 얘기하는 나나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주이는 해외로 긴 여행을 떠났고 빽 역시 짧게는 일년 계획으로 해외에 나갔다. 자신의 옆에 없는 동료들에 대해 나나는 그들이 새로운 경험을 갖고 들어오면 자신에게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면은 오래전으로 돌아가 어느 여행에서 이 세 사람이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나나의 내레이션이 계속 흐른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재미난 기술자들이 되면 각자의 소질들을 모아서 얼마나 귀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 얘기한다. 비틀스의 노래 가사처럼 길고 넓은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의 우정에 관하여 이 영화는 부드럽게 찬미한다. 나는 사람들이 명분을 갖고 지속적으로 뭔가 함께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인간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주인공들의 그 말랑말랑한 낙관주의에 묵묵히 감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