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베넷이 “지금까지 활자화된 인물 중에 가장 유쾌한” 주인공이라고 믿었다. 두쌍의 연인이 사랑싸움을 하다가 결혼하고 한쌍의 연인이 야반도주를 했다가 결혼하는 것 말고는, 그러니까 세번의 결혼 말고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긴 소설이 200년 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아마도 그녀 덕분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베넷, 시골구석 옹색한 베넷가의 다섯딸들 중에서 두 번째로 아름답고 첫 번째로 영리한 처녀, 하지만 말싸움이라면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도 울고 갈 최강의 싸움꾼.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의 감독 버 스티어스는 “<오만과 편견>의 모든 장면은 기본적으로 스파링 매치이고, 모든 대사는 블로와 카운터블로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당연히 소설과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도 그녀 외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을 험담하고 깎아내리면서 오직 이 특별한 처녀에게 집중한다.
세 가지 창작물 모두에서 엘리자베스는 싸움을 잘한다. 입안에 칼날을 품은 듯 신랄한 언변을 과시하며 장래 남편과 싸우던 노처녀에서, 진짜 칼을 가슴에 품고 그 칼을 찔러넣을 만한 좀비를(그리고 가끔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전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르다.
오스틴이 자랑스러워했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아가씨, 심지어 다아시가 소유한 광활한 펨벌리 저택과 장원을 보고서야 그와 사랑에 빠진 속물적인 처녀는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선 맹목적으로 피에 굶주린 살인자가 된다. 성질을 건드리면 칼을 먼저 들고, 칼을 들었다 하면 피맛을 본다. 틈만 나면 소림사에서 수련했다고 강조하지만 거기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에선 생뚱맞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던 그 성질마저 잃어버리고, 굳이 엘리자베스 베넷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을 평범한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전락한다.
아이디어와 설정만 빛날 뿐
소설과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의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다. 수십년 전에 낯선 전염병이 퍼지면서 영국 전역은 좀비와의 전쟁터가 된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안식을 찾지 못한 채로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어 인간의 뇌를 탐한다. 그런 시대에 베넷씨는 다섯딸들을 위해 마땅한 신랑감을 찾는 대신 그들을 소림사로 유학 보내 걸출한 전사이자 하트퍼드셔의 수호자로 키운다.
어느 날 거주자들이 모두 좀비에게 도살당한 이웃 네더필드 파크에 부유한 신사 빙리(더글러스 부스)가 새로 이사를 온다. 빙리는 베넷가의 맏딸 제인(벨라 헤스콧)에게 호감을 표해 베넷 부인을 기쁘게 하지만, 함께 온 친구 다아시(샘 라일리)는 베넷 가족과 주민 대부분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는 빙리보다도 부유하지만 오만하고 차가운 청년이다. 그중에서도 베넷씨가 가장 아끼는 둘째딸 엘리자베스(릴리 제임스)는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욕하는 소리를 엿듣고는 다아시를 거의 미워하다시피 하지만, 다아시는 어느덧 그녀의 지적인 눈동자에 반하고 만다.
주로 논픽션을 썼던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첫 번째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3위에 입성하고 100만부 이상이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정식으로 소설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읽어봤으면 답은 분명히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서 돋보이는 건 호전적인 엘리자베스를 진짜 사냥꾼으로 만들었다는 아이디어와 <오만과 편견>의 모든 유명한 대목에 좀비 사냥을 끼워넣은 재치이다. 그리고 그건 소설을 쓰는 재능이라기보다는 설정을 만드는 재능에 가깝다. 실제로 그는 두 번째 소설이자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보다 먼저 영화로 만들어진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을 쓰면서 <MTV>의 코미디 시리즈 <RJ 버거의 불운한 시대>(The Hard Times of RJ Berger)의 작가로 일했는데, 진정 본인의 재능에 어울리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
박하게 말하자면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다윈의 수호자이자 불같은 성질을 지녔던 헉슬리의 장담을 떠올리게 한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원숭이가 무작위적으로 타이프를 치더라도 결국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고스란히 옮길 수 있을 것이라는. 알고 보면 링컨은 뱀파이어 사냥꾼이었다는, 제목이 곧 내용인 지루한 연대기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은 그런 의심을 한층 설득력 있게 만드는 표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장르건 좀비가 나와 성공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그런 점에서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소설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불꽃이 튀는 듯한 설전의 매력을 영상으로 옮기는 건 어렵겠지만, 최소한 좀비만은 읽는 것보다 보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엘리자베스가 좀비를 보고 몇번을 토하더라도, 영화를 보며 그녀가 구두 뒤축으로 좀비 머리 짓이기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역겨울 수는 없다.
놀이기구가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을 이기다
당연하게도 원작에서 액션 블록버스터의 요소를 최대한 강화한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실제 전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전쟁의 그림자가 짙었던 제인 오스틴 시대의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강조하면서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이 살던 영국은 유럽 전역을 정복한 나폴레옹 전쟁의 악몽이 남아 있어 군대가 긴장을 풀지 못했던 시대였다. 시민과 군대가 공존해야만 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영화는 평범해졌다. 순수문학의 옹호자라면 발끈하겠지만,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현대 로맨스 소설 팬들에게 원조로 추앙받는 소설이면서 매우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다아시의 여동생 조지애나는 결혼한 올케를 보고서야 비로소 오빠를 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감독 스티어스는 영화가 지나치게 코믹해지지 않도록 경계했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2세기 동안 그 매력을 잃지 않은 오스틴의 유머는 2800만달러짜리 영화가 되면서 박대받으며 쫓겨났다. 싸우는 데는 돈이 들지만 웃기는 데는 돈이 들지 않거늘, 평생 노처녀로 살며 친지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독자를 웃길 수 있었던 오스틴의 아이러니다. 그녀가 무덤 속에서 걸어나와 감독의 뇌를 탐해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가 평범한 독자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행보를 택한 건, 동어반복이겠지만 액션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보다 한층 커진 스케일로 좀비도 잡아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는 바쁜 주인공에게 원작 못지않은 재치까지 과시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매우 사려 깊게도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원작이 의문만 제기한 채 은근슬쩍 넘어가고 답을 하지 않았던 질문, 왜 갑자기 좀비가 단체로 공격하기 시작했을까에 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분투한다.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게 최선이었을까. 블록버스터여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만은 없는 게, 우리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를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영화는 모든 결정적인 대사와 상황을 제공해주는 원작도 없는, 테마파크 놀이기구가 모티브인 영화였다. 말 한마디 못하는 놀이기구가 재치 넘치는 대사의 향연인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을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