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는 ‘예술가의 탄생’이라는 서사를 통해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란 탈북자의 ‘개인 되기’를 그린다. 김수는 <씨네21> 1031호에 실린 리뷰와 20자평을 통해 “탈북자의 고난을 피상적으로 그렸고, 반전도 쉽게 예측되며, 그림들도 현역 작가들의 작품을 짜깁기한 티가 많이 난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부당하다. <설지>가 걸작은 아닐지라도, 그리 형편없는 작품은 아니며, 특히 탈북자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그렸다거나 영화 속 그림들이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탈북자는 어떤 존재인가?
현재 한국의 탈북자 수는 약 2만8천명을 헤아리며, 한해에 2천~3천명씩 늘고 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탈북자들이 중국,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북남미 등에 존재한다. 일단 북한을 이탈한 이들이 중국 등 제3국에 머물다가 일부가 한국에 입국하기도 하고, 북한으로 재입국하는 경우도 있으며, 한국을 경유해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탈북자는 상당히 글로벌한 존재로, 국제난민이자 이주민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1990년대 탈북자들은 굶주림을 피해 왔지만, 북한의 경제난이 상당히 해소된 지금의 탈북자들은 북한처럼 폐쇄된 사회를 떠나 더 좋은 곳에서 기회를 찾고자 국경을 넘는다. 그래서 10, 20대 탈북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탈북자들의 삶은 쉽지 않다. 정착금이 감소한 데다 경쟁이 극심한 남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익힌 지식 중 상당수는 남한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들의 말투, 주민번호, 주거지 등은 탈북자라는 꼬리표로 작용해 사회적 편견과 맞부딪힌다.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인식은 냉담해지고 있다. 냉전시대에 탈북자들은 ‘귀순자’라 불리며, 반공서사 안에서 체제선전용으로 활용됐다.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고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은 동포애와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이 노동시장 하부를 점하면서 조선족과 마찬가지로 ‘한국말이 통하는 이주노동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민주정부 시절에는 통일한국의 미래를 가늠할 ‘먼저 온 미래’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남북 긴장이 고조된 오늘날 탈북자들은 다시금 반공 극우세력들의 체제선전에 포획된다. 여기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적 혐오가 확산되면서 탈북자들에 대해서도 온정적인 시각보다 혐오가 작동한다. 특히 탈북자들에게는 “빨갱이”라는 이념적 적대와 “가족을 버리고 온 배신자”라는 낙인과 “돈이면 뭐든 한다”는 계급적 경멸이 동시에 투사된다. 여기에 남한 사회의 고용과 복지가 후퇴하면서 탈북자들에게 주어지는 임대아파트나 대학입학특례 등을 시기하는 남한 사람들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탈북자들은 외적 편견은 물론이고, 내적 고통과도 싸워야 한다.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겪었을 심리적 외상도 상당하고, 가족과 헤어진 경우 외로움도 심하다. 또한 공안당국의 감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 결과 탈북자들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인의 평균 자살률에 비해 3배나 높다. 이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극우 반공주의의 첨병이 되거나, 탈북 과정에 도움을 준 개신교 세력에 귀의하곤 한다. 이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란 이들이 한 사람의 자유로운 개인이자 민주시민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준다. 극우 반공세력들이 탈북자들을 선전용으로 삼는 반면에, 진보 민주세력들은 탈북자들의 인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채 그들의 존재를 곤혹스러워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자유로운 개인이자, 민주적 소양을 갖춘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시민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탈북자에 대한 가장 첨예한 문제의식
<설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이다. 그동안 탈북자들을 그린 몇몇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크로싱>처럼 탈북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다루거나,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이주노동자와 다를 바 없어진 탈북자들의 낯설고 궁박한 처지를 그리거나, <무산일기>처럼 남한의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영악함을 익혀야 할지 고민하는 탈북자를 그리거나, <댄스타운>처럼 공안당국의 폭력과 의지할 곳 없는 고독에 방치된 탈북여성을 그리는 식이었다. 이 영화들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탈북자들의 고통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나 <설지>는 그들의 고통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영화적 판타지를 통해 내면의 분열을 비춘다. 리얼리즘이 아닌 방식을 취했다고 그들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그렸다고 비난할 수 없으며, 반전이 쉽게 예측된다 해도 큰 흠이 아니다. 어차피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며,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그러했듯 주인공의 내면에 서린 병적 죄의식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영화는 가장 업데이트된 탈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탈북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연락하는 것이 가능하다. 영화 속 휴대폰으로 북한 가족과 통화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사실이다. 북한의 가족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최대한 자신을 숨기고 살려는 설지의 모습도 현실적이다. <설지>의 가장 뛰어난 점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길러진 인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되는 과정을 ‘예술가의 탄생’이란 서사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탈북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탈북자 개인의 재능과 고민과 내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선전벽화를 그리던 설지는 남한에서 그래피티를 그리지만, ‘자신만의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에게 그림은 일이었을 뿐, 작가로서 자신이 원하는 걸 그리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다큐멘터리 촬영의 대상이 된 설지는 처음에는 거짓 포장된 예술가였지만, 폭발적인 자기분열의 과정을 겪으면서 진정한 작가로 거듭난다.
예술가들과 협업
영화는 설지의 예술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여러 명의 화가들과 협업했다. 처음에는 남의 그림을 베끼고 짜깁기하던 설지가 점차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영화는 실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납득시킨다. 영화에는 10여명의 작가가 그린 50여점의 그림이 등장한다. 서울과 제주의 벽화, 티셔츠 그림, 작업실 캔버스화들은 작가 하찌, 코마, 반달, 델로스, 후다니, 킬드런 등이 직접 그린 것이다. 설지가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찾기 전이 그림 저 그림을 모방해서 그리던 시절이었으므로 여러 작가들의 그림이 공존하는 건 당연하다. 이를 짜깁기라 비난해선 안 된다. 그러나 설지는 자기분열의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찾는다. 영화는 이 과정을 반달과 킬드런의 작품을 통해 표현해낸다.
설지의 실제 모델은 북한에서 선전화를 그리다 탈북한 뒤 세계적인 화가가 된 송벽 작가이다. 그러나 설지의 그림은 송벽의 작품과 확연히 다르다. 송벽은 북한 선전포스터 등을 비틀어 다시 그리는 방식으로 서구 사람들에게 북한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팝아티스트로 소구된다. 어쩌면 송벽 작가의 작품은 또 다른 의미의 선전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설지의 작품은 선전과 반선전의 층위를 떠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탈북자가 진정한 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