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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영화비평] 끝없이 확장되는 마블의 퍼즐

코믹스(comics)의 우주(cosmos)에서 <앤트맨>의 위상을 분석하다

<앤트맨>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으로 일대 군상극을 벌인 마블 스튜디오는 또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을 소개하며 전열을 재정비한다. <앤트맨>(2015)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에 간만에 등장한 단독 히어로영화다. 코믹스 원작에서의 앤트맨은 어벤져스 초창기 멤버이자 과학자로 울트론을 창조할 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였으니 도리어 영화화가 늦은 편이지만, 영화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된 <앤트맨>은 점차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이는 마블 슈퍼히어로영화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회장 케빈 파이기의 지휘 아래 마블이 2019년까지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공개한 가운데, <앤트맨>은 앞으로 있을 마블 슈퍼히어로영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점검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혼성(hybrid) 장르영화로서의 <앤트맨>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미래형 활극이지만 공교롭게도 <앤트맨>의 바탕에 깔린 것은 익히 보아온 영화의 클리셰들이다. 마블의 제작진은 ‘앤트맨’의 영화화를 결정하면서 공감대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했고, 이는 가족영화의 인물과 드라마적 구성, 범죄영화의 화법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앤트맨이란 캐릭터가 친숙하지 않고 그 특성상 낮설고 참신한 연출이 여러 번 보이는데도 이 작품이 시원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통속적 요소들이 앤트맨 슈트라는 참신한 외양을 입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앤트맨>은 두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첩시킨다. 2대 앤트맨 스콧은 범죄 이력과 아내의 재혼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1대 앤트맨 행크 핌은 딸 호프와의 오랜 불화로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스콧은 영웅으로 거듭나 범죄자의 낙인을 지우고, 행크는 딸과 함께 대런 크로스에 맞설 작전을 준비하며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위기 상황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스콧은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행크는 호프의 안전을 염려해 히어로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망가진 가족을 복구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두 인물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상호간의 유대와 신뢰가 갈등의 해결을 이끌어낸다. 파괴된 공동체가 복원되어가는 점진적 과정. 그런 점에서 <앤트맨>의 근간에는 보편적인 미국식 가족 드라마의 구도와 감수성이 짙게 배어 있다.

또한 <앤트맨>은 강탈영화(heist movie)의 속성을 지닌 영화이기도 하다. 행크 핌이 스콧을 후계자로 낙점하고 캐스팅하려 했을 때 “무단침입을 해서 물건을 훔치는 일상은 이제 끝이죠. 제가 뭘 하길 원하시죠?”라는 말에 “무단침입해서 뭐 좀 훔쳐주게”라 답한 건 재치 넘치는 위트를 넘어서, 이 영화가 지닌 장르적 본질을 정확히 지적하는 대목이다. ‘숙련된 솜씨를 지닌 프로페셔널이 모여 집단을 이룬다 → 목표를 탈취하기 위해 완벽한 시나리오를 계획한다 → 예행 연습을 통해 작전 당일 할 일에 숙달하게 된다 → 실행하는 단계에서 실수나 착오가 발생해 위기에 빠진다 → 일대 반전이 일어나 주인공은 목적을 달성한다’는 식의 공식(formula). 앤트맨 활동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기지 침투에서 최종 작전에 이르기까지 <앤트맨>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에서부터 <엔트랩먼트>(1999)와 <오션스 일레븐>(2001)에 이르기까지 다듬어져온 (낙관적인 색채의) 강탈영화의 서사 구조를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 수법이나 속임수가 첨단 과학의 테크놀로지로 바뀌었을 뿐 장르 고유의 관습과 얼개는 유효하다.

이처럼 <앤트맨>은 가족 드라마의 감정선과 강탈영화의 서사 구조를 같이 끌어안으면서, ‘어디에든 침투할 수 있게 작아지는 영웅’ 앤트맨의 특성과 인간적인 면모를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앤트맨>은 슈퍼히어로물이기에 앞서 장르의 혼성(hybrid)이다. 이것으로 앤트맨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의 진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참고로 <앤트맨>의 촬영감독은 제임스 카메론과 <트루 라이즈>(1994), <타이타닉>(1997)을 작업한 특수효과 촬영의 달인 러셀 카펜터다. 극중 ‘타이타닉’에 대한 언급은 우연이 아니다).

점과 선으로 직조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앤트맨>에는 여러모로 <아이언맨>(2008)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장대한 기획의 일부분으로서 새로운 캐릭터를 대중 앞에 선보이는 역할을 맡지만, 독립된 작품으로 떼어놓고 보아도 무방한 서사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이는 <퍼스트 어벤져>(2011)와 <토르: 천둥의 신>(2011)의 이야기가 <어벤져스>(2012)와 연계되어서야 기승전결이 완성되는 예비서사(exposition)에 그쳤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후속으로 이어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토르: 라그나로크>(2017)로 나아가기 위한 포석을 놓는 데서 이야기의 맥을 끊은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앤트맨>은 강탈영화와 영웅 서사, 가족 멜로의 전형적인 모델을 끌어들여 장르영화로서의 구조적 완성을 꾀한다. 그러나 이외의 마블 스튜디오 영화들은 특정 장르의 틀에 맞추기보다는 전편과 후속작 간의 유기적 연결선상에 서서 만화의 세계관과 사건을 차례대로 풀어나가는 연속극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슈퍼맨>(1978) 이래로 강호가 된 DC 코믹스 히어로물의 위상에 필적하게 된 마블 스튜디오는 이제 개별영화들의 분절된 파편들을 조립해 짜맞추며 조금씩 세계관의 윤곽을 완성하는 모자이크화(mosaic畫) 방식으로 프랜차이즈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앤트맨>과 사뭇 호오가 엇갈리는 반응을 얻은 것은 한편으로 정리되지 않고 후속작을 위한 징검다리에 그치는 서사 구조의 고의적인 불완전함, 마니아와 팬보이들을 겨냥해 코믹스의 세계로 침잠하면서 일반 관객과 마니아층 관객이 확연히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이언맨>부터 구축해온 마블영화의 팬층이 그만큼 두터워졌음을 시사한다.

마블 스튜디오가 공개한 라인업에 따르면 현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새롭게 합류할 캐릭터들의 단독 영화로 <닥터 스트레인지>(2016), <블랙 팬서>(2018), <캡틴 마블>(2018)이 예정되어 있다(제목 미정의 스파이더맨 영화도 포함). 여기서 등장한 캐릭터들은 다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Part 1>(2018)과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Part 2>(2019)에서 기존 어벤져스 멤버들과 합류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런 가운데 먼저 새 멤버로 진입한 앤트맨은 마블의 우주에 등장한 또 하나의 작은 점일 것이다. 점과 선의 영화가 교차하며 별자리를 만들면, 그 별자리가 모여 광활한 천체를 이루듯, 마블 슈퍼히어로영화의 우주는 그렇게 자기조직하고 자기증식하는 중이다. 업그레이드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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