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4분이다. 제리 시장이 연못을 메우고 고속도로를 설비하면서 인간이 얻을 이득은 4분간의 이동시간 절약이다. 그가 이 짧은 시간에 목맨 이유는 오직 대중으로부터 환호받고 싶어서다. 그의 재임 여부는 사람들의 호불호에 달려 있다. 연못에서 인생 절반을 느리게 보내며 많은 생명체의 존재를 목격해온 19살 소녀 메이블은 터무니없는 시장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든다. 도시개발이냐 자연보호냐. 산업화 이래로 오랫동안 인간사를 뒤따라온 첨예한 논쟁이 이번엔 디즈니·픽사를 찾았다. 여기까지 보면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의 보편적 문법에 따라 다음 전개가 무리 없이 예측된다. 아마도 제리 시장은 탐욕에 찬 음모를 꾸려 자연을 죄책감 없이 파괴하고 도시행정으로 사리사욕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용감한 주인공 소녀는 빌런을 처치하고 동물들과 힘을 합쳐 다 함께 공생하는 유토피아를 구해낼 것이다. 하지만 <호퍼스>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개척해 걷는다.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의 오래된 드라마 트랙이 아닌, 현실 세계의 정치를 그대로 복사한 듯 신랄하고 정당한 ‘대결 구도’를 채택한다.
제리 시장에게 메이블은 눈엣가시다. 고속도로 공사를 재개할 때마다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발파용 폭약을 거침없이 막아선다. 밤낮도 구분하지 않는다. 제리 시장이 어디에 있든, 시간대가 언제든 기어코 그를 찾아내 말싸움을 건다. 영화 초반부 빠르게 흘러가는 메이블 VS 제리 시장의 언쟁 시퀀스는 집착적일 만큼 수평 구도로 그려지면서 중년의 백인 남성 정치인과 어린 동양인 여성 환경운동가의 싸움을 대등하게 묘사한다. 자연보호와 도시개발이라는 서로 다른 이념을 순수히 판단하기 위해 사회적 위계나 계층문제의 곁가지를 걷어내고 두 사안만 천칭 위에 나란히 올려둔 것이다.
실제로 제리 시장은 순전한 빌런이라고 일컫기엔 의외인 구석이 많다. 그리고 이 지점은 <호퍼스>가 추구하는 ‘영화의 정치적임’에 중요한 엔진이 된다. 먼저 제리 시장이 메이블에게 내기처럼 내건 것은 주민들의 서명이다. 진정으로 시 정부의 계획을 막고 싶다면 48시간 동안 일정 기준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반대 서명을 받아오라고 말한다. 제리 시장은 어떻게든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재임을 꿈꾸지만 청소년의 외침을 무시하지 않는 어른이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과 일치하지 않을지언정 시민들의 반대 의견을 모아온다면 연못 폭파를 재고하겠다는 스탠스를 보인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인기와 명예를 오래 누리고 싶어 하는 음흉함이 있지만 그 욕망도 결국 민주주의 위에 안전하게 서 있다. 포퓰리스트이면서도 동시에 민주주의 이념과 절차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모순은 제리 시장을 인간적으로, 입체적으로 만들기 충분하다. 게다가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팬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주며 이마에 키스를 하고, 의외로 작은 집에 살며 이웃들에게 친절하다. 메이블이 도로공사를 반대할 때마다 반복하는 말도 “사람들이 원해서!”다. 다시 말해 제리 시장은 극악한 빌런보다는 전형적인 관종 정치인에 가깝다. 우리가 오늘도 뉴스에서, 유튜브에서, SNS에서 마주하는 대중친화적이고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 만일 <호퍼스>가 제리 시장을 다짜고짜 무자비한 악인으로 표현했다면 도시개발이라는 주제는 사유의 여지도 없이 악행의 일환으로 뭉뚱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시민들이 원하는 것에 따라 영리하게 움직이는 이해 타산 빠른 정치인, 대중의 욕망을 투영하는 투명한 거울로서 위치시켜 개인을 지우고 다수의 간편한 욕망을 대변한다. 방향이 사라지고 과정의 정당성만 남았을 때 일어나는 오류라 해도 좋겠다.
픽사가 선택한 ‘정치적임’
정치에서 과정의 정당성은 얼마나 중요한가. 제리로부터 일종의 미션을 받아든 메이블은 집집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한다. 샘 교수가 개발한 호핑 기술로 비버 로봇이 되어 동물 세계에 잠입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활용한 기술도 이 과정에서 배운 현관문 두드리기다. 메이블이 그랬듯 허공에 외치다 끝나버리기 십상인 서명 운동이 주인공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채택되는,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 완성될 수 있던 것은 <호퍼스>가 명시적으로 그것을 중요한 ‘사회 기술’로 읽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는 어떨까. 포유류의 왕 조지와 친구가 된 메이블은 무려 자문위원으로 임명된다. 이 지역의 신참인 메이블이 자문위원으로 계층 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메이블이 똑똑해서. 그리고 조지가 비혼주의여서. 결혼엔 일체 관심이 없다며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과 대머리를 자랑하는 그는 다음 후계자가 없기에 더더욱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조지는 자신이 직접 꾸린 왕국의 왕이 되었다. 관습과 전통을 과감히 거부하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비버는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걸맞은 자유로운 왕으로 거듭난다.
이때 동물 세계에서 열린 의회 테이블에서는 세 인물이 두드러지게 자기 욕망을 드러낸다. 조합도 묘하다. 환경운동을 벌이는 동양인 여성 청소년, 비혼주의인 포유류의 왕. 그리고 한순간에 엄마를 잃고 왕좌를 이어받은 어린 애벌레 타이타스. 소수성을 띤 고위직 인사들은 의회 테이블에서 인간 파괴(메이블), 상리공생(조지), 세계정복(타이타스)이라는 각기 다른 욕망을 선언한다. 인간의 이기심에 질려버린 외로운 운동가는 인간의 왕 제리를 무찌르자고 하고,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길 바라는 비버는 공생을 말한다. 고아가 된 어린 왕은 피라미드 가장 하단에 선 곤충이 세계를 정복하길 바란다. <호퍼스>의 세계에서 발언권을 가진 이들은 공통되게 거국적이고 원대한 꿈을 내세우는데 그것들은 모두 개개인의 외로움과 소수성에서 출발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디즈니·픽사가 <호퍼스>를 통해 정의한 정치란 결국 소수성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유기체이자 서사다. 개인의 결핍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목표와 정책, 욕망과 희망을 만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엿한 프로파간다로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가장 무서운 최상위 포식자가 왕위를 차지할 거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포유류엔 비버가, 파충류엔 나비가, 조류엔 거위가 왕으로 의회에 참석한 것도 다수적 선입견에서 벗어나 비-다수의 관점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 세계가 우경화 흐름과 10대 극우화로부터 전염당하는 중이다. 인류가 오랜 싸움으로 거둬낸 자유와 평등은 이들의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로 격렬히 요동친다. 중립지대에 서 있지 않는 자는 극우로부터 적으로 낙인 찍혀 겨냥되기 십상이다. 어쩌면 지금은 중립-안전주의 시대. 그런 와중에 서 있는 자리를 헷갈리게 하지 않고, 오히려 둥글고 원만한 길을 거부한 <호퍼스>의 정치적 스탠스는 놀랍고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 말미에서 시장 제리는 끝내 마음을 돌린다. 인간과 동물이 여러 번의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다 거대 산불을 맞닥뜨렸을 때, 그리고 온전히 동물들의 힘을 빌려 고난을 해결했을 때 제리 시장은 고속도로 건설을 다시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진취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중반부와 달리 <호퍼스>는 갑자기 착한 엔딩으로 끝맺음되는 걸까. 여기서 잠깐 영화 바깥을 상상해보자. 제리 시장은 아마도 재임에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가 동화처럼 반성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기준을 거부한 비버 왕과 어린 환경운동가의 설득 끝에 소실된 연못에서 어떻게든 “인간의 흔적을 지우”려는 정치적 행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