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트 캘린더’라는 게 있다. 나도 이것의 존재만 알고 이름은 몰랐는데 이걸 ‘어드벤트 캘린더’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드벤트 캘린더가 뭐냐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하루에 하나씩 그 날짜에 준비된 제품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선물 달력’이다. ‘어드벤트’가 영어로 강림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전의 4주간을 뜻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홀리데이 캘린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툼한 상자에 날짜 표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 숫자 부분을 꾹 누르면 종이가 뜯어지면서 안에 있는 제품을 만날 수 있다. 화장품부터 초콜릿, 주얼리, 향수, 와인, 맥주, 장난감 등 종류도 다양하다. 상자가 무한히 커지기 힘든 만큼 제품들도 보통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있어 미니어처를 모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최근에 티 어드벤트 캘린더를 선물로 받았다. 매일 그날의 차 티백이 들어 있다. 어떤 날은 평범한 차, 어떤 날은 가향 차가 들어 있고 어느 날은 티백 한개, 어느 날은 티백이 두개가 들어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아직 다섯개밖에 오픈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이 세심한 선물 덕에 나의 삶에는 약간의 윤기가 흐른다. 12월1일부터 며칠째 그날의 차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좋아하는 차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열어본다. 좋아하는 차가 나오면 그래서 기분이 좋고, 특별히 좋아하는 차가 나오지 않더라도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이 생각나 기분이 좋다. 이 선물 덕에 나는 적어도 크리스마스이브까지는 아침에 한번쯤 행복한 사람이 됐다. 삶에서 이것 이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일을 약간 기대하고, 하루에 한번 정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연말을 맞아 돌아보는 삶은 대체로 엉망이다. 남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 못남과 피치 못하게 숨기는 데에 실패한 못남이 눈만 감으면 달려들어 곤란하다. 나는 왜 이리 속이 좁고 못났나. 왜 일을 하는 데에 빠릿빠릿하지 못했나. 왜 한심한 선택을 했나. 그 일은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 사람에게는 이런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고마움과 미안함과 막막함 사이에서, 나갈 곳도 없어 보이는 꽉 막힌 ‘ㅁ’(미음)의 한가운데서 한숨을 쉬는 때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내일의 차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다시금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차를 확인할 것이다. 물을 끓이고, 차가 우려지는 동안 가만히 서서 나를 달랠 것이다. 입김 보이는 한숨 대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코앞에 들이대고, 뜨끈한 차가 살아 있는 몸 구석구석 퍼지는 느낌을 다 느낄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다정이라는 듯이. 그 다정을 마셔서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듯이. 나는 여전히 엉망이지만, 조금 행복한 엉망이다. 그것이 연말의 마법이고, 어드벤트 캘린더의 마법이며, 다정의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