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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판타지 비즈니스
우석훈(경제학자) 2021-11-25

최근에 집에서 <무신: 용의 귀환>이라는 2020년에 제작된 중국영화를 보았다. 물론 무료라서 본 것이기도 하고, 조자룡 얘기라서 본 것이기도 하다. 아내는 최근의 중국영화들을 선전영화라고 질색하고, 그런 걸 보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간다. 가끔씩 중국 고전을 다룬 영화 중에서 의외로 재밌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재미없다. 유명한 조자룡의 장판교 전투를 다룬 영화이기는 한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여주인공이 중반까지도 못 가고 바로 죽어버려서 김이 샜다. 그 후에 영화는 산으로 갔다. 조자룡 나오는 영화는 어지간하면 보고, 한신 나오는 영화도 설령 가짜 영화라도 본다. 그건 나의 판타지다. 프랭크 허버트의 <>은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망했다. 스팅이 출연했고, 음악은 토토가 맡았다. 나는 재밌게 봤지만, 사람들의 판타지를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때 O.S.T 음반을 샀고, 아직도 가끔 듣는다. 뒤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도 전부 구해서 봤다. 소설 <>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어느 생태학자의 보고서”라는 짧은 단문들이 너무 재밌어서 박사 논문을 생태경제학으로 바꾸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 <>은 빅히트를 쳤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라키스에서 스파이스를 두고 벌어지는 판타지에 초대장을 받아들었을 것이다.

현재 연극은 보는 사람이 보는 일종의 습관 비즈니스다. 그와는 규모가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영화는 판타지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배우를 통해 만들든, 스토리 구조를 통해 만들든 아니면 구도와 장면을 통한 신으로 만들든,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들이 크게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판타지는 다시 관객을 새롭게 극장으로 오게 만든다. 영화, 특히 상업영화라는 특수한 상품이 가지는 유용성을 상품의 요소로 축약하면 판타지가 아닐까 한다. 물론 판타지에도 문법이 있고,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을 깨는 것도 역시 나름의 문법이 있다. 할리우드 문법과 한국영화의 문법에도 미묘하지만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영화산업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은 판타지를 만들고 보여주는 일에 대한 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영화가 드디어 외국에 나가도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의 판타지에 세계인이 동승할 문화적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판타지는 시작은 개인의 것일지 몰라도, 영화가 다루는 판타지는 사회화된 판타지이고, 문화화된 판타지이다. 할리우드가 거의 독점적으로 만들어내던 판타지에 드디어 우리도 한자리를 차지한 것 같다. 의식주 같은 상품과는 사용가치가 완전히 다른 영화라는 상품이 가지는 판타지의 속성을 잠시 생각해보았다. 판타지라는 사용가치, 그걸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투자를 비롯한 많은 생산 구조들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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