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추락’편 공식 메이킹 영상 유튜브 캡처
지난주 식사 중 화제는 요즘 부쩍 친절해진 택시였다. 복잡한 도시에 좁은 공간의 이동수단이라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는 택시 속 경험이 몰라보게 바뀌고 있음에 모두가 공감했다. 하차 전 별점을 읍소하는 기사 분들을 만난 경험 또한 자리에 모인 전원에게 있을 정도로 이제는 평판 때문에라도 질 높은 서비스가 당연해지는 플랫폼 시대가 도래했다.
기사보다 손님이 우위에 서게 된 지금의 상황이 기반시설은 열악하고 경제발전의 기울기는 가파른 시절에 자란 내겐 도무지 익숙지가 않다. 타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차는 항상 부족했기에 친절함까지 요구하기엔 승객의 입지가 한없이 작았다. 짐짝이 실리듯 모르는 이들과 함께 가야만 했던 ‘합승’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지라 요즘의 변화는 황송하기까지 하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것이 넷플릭스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의 ‘추락’(Nosedive)이다.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 평가가 5점 만점으로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주인공은 상대에게 만점을 선사하며 본인도 호혜적인 평가를 기대한다. 별점이 높은 이에겐 아파트 할인부터 비행기의 우선 탑승까지 온갖 특혜가 제공되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평점을 높이기 위해 위선적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모든 일은 망가져버리고 인물들은 본성을 드러낸다.
극 속 이야기가 극단적이긴 하지만 별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자동차 수리가 끝나면 해피콜을 안내하거나 가전제품 방문 수리를 끝낸 기사 분들이 5점 만점을 신신당부하는 것을 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꽤 되어간다. 이것이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평판이 실시간으로 환금되는 사회가 온 것이다. 택시는 별점이 높아야 몇초라도 우선 콜을 배정받을 수 있기에 생계를 위해 그간 익숙지 않았던 친절함을 치열하게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불현듯 지난해에 만난 80대 중반의 기사 분이 생각난다. 막히는 도로 위에서 인생의 혜안을 주신 길 위의 현인에게 별점뿐 아니라 소액으로 감사의 마음을 더했다. 반백년 넘게 택시를 모는 노장의 최신형 전기자동차 내부에는 카카오로 콜을 받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생존을 향한 적응은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게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며 존경심을, 그리고 그만한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빠른 변화에 현기증을 느꼈다.
지난달 우리 집 근처 동네에 새로 생긴 무인 카페에서 로봇 바리스타가 나를 반겨주기 시작했다. 로봇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택시에 자율주행 기술이 현실화되면 별점을 받을 기사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란 깨달음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 더이상 별점을 원하지 않을 로봇 카페의 로봇 바리스타와 무인 택시가 내게 손님으로서의 자질에 대해 일방적으로 별점을 부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급우울해지고 말았다. 역시 우리는 디스토피아로 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