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이 저녁에 눕는 자리를 옮겼다. 얼마 전까지 담요를 씌운 작은 의자를 쓰던 첫째는 캣타워 높은 곳, 에어컨 바람이 잘 드는 칸에 누웠다. 지난달까지 폭신폭신한 해먹에 몸을 말고 자던 둘째는 이제 베란다 타일 위에 철퍼덕 누워 머리만 집 안으로 내밀고 있다. 장판보다는 타일이 시원할 터다.
고양이들과 함께 산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2013년 가리봉동에서 태어난 첫째, 커크는 어느새 여덟살이다. 사람이라면 지천명일 나이다. 원래도 똑똑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세상사를 좀 아는 표정을 짓곤 한다. 2017년 연남동에서 태어난 둘째, 스팍도 어느새 네살이다. 고양이가 네살이면 어느 모로 보아도 다 자란 나이인 데다 몸집도 크지만 하는 행동은 아직 새끼 고양이 같다. 아침마다 오빠(동거인)의 뱃살에 열심히 꾹꾹이를 하고, 사료통 여는 소리에 겅중겅중 뛰어온다.
커크를 처음 데려왔을 때, 나와 동거인은 이 암컷 고양이의 언니와 오빠가 되기로 했다. 인간을 동물의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컷인 스팍을 데려오며 ‘족보’가 엉켰다. 우리는 스팍에게도 언니와 오빠가 되기로 했다. 커크는 스팍의 고양이 누나, 나는 인간 언니, 남편은 인간 오빠다. 따져보면 인간한테 고양이 자식이 있는 것이 이상하다면 고양이 동생이 있는 것도 그 못잖게 이상한데,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고양이들에게는 습관이 있다. 커크는 해가 저물면 잠자리를 세번 옮긴다. 저녁에는 소파 위에 있다가, 밤에는 침대 위로 올라온다. 꼭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다. 깊은 밤에는 우리 모르게 캣타워로 갔다가, 남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면 다시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와 내 옆에 눕는다. 스팍은 창틀 사이를 좋아한다. 부엌이나 서재의 창틀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졸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이중창 사이를 겅중겅중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스팍은 발이 하얀 턱시도 고양이인데, 먼지가 앉은 방충망에 몸을 꼭 붙이고 앉다보니 자꾸 발이 꼬질꼬질해진다. 커크는 부엌 구석 찬장을 안가(安家)로 쓰고 있는데, 찬장 안에 있던 그릇 상자를 몇년 동안 꾸준히, 모조리 뜯었다. 찬장을 열면 종이 상자 조각과 털 뭉치가 풀풀 날린다. 계절마다 즐겨 앉는 자리가 바뀌고,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고양이의 습관을 따라 인간의 삶에도 습관이 생겼다. 침대 흔들리는 감각에 잠을 깬다. 털투성이인 이불을 걷고 일어나자마자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눈곱을 뗀다. 낮에 숨을 참고 화장실 모래를 치운다. 퇴근하자마자 밥그릇을 확인하고 일부러 차르르 소리가 나게 사료를 붓는다. 주말이면 고양이 발톱깎이를 들고 눈치게임을 한다. 잠든 고양이 아래에 손을 슬쩍 집어넣고 그 온기를 느낀다.
고양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나는 꼭 손가락을 내민다. 손가락을 본 고양이가 손을 핥아주거나 이마를 부딪혀오면, 나는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사랑해. 우리랑 살아줘서 고마워” 하고 말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넷이 살아온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추억과 습관만 남을 날이 두려울 때에도. 언제나 그냥 문득 고맙고, 그냥 문득 사랑한다. 그러면 고양이는 가끔은 까끌한 혀로 내 얼굴을 핥고, 그보다 더 자주,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간다. 그저 한 발짝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