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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마음의 흔적을 나누다
송길영(Mind Miner) 2021-02-03

얼마 전 나의 책장 속 책들이 방송에 소개되었다. 그 시작은 회사를 방문한 콘텐츠 제작사 대표님(이라고 쓰고 송은이님이라고 읽는다)에게 라이브러리를 소개하면서부터였다. 회사의 동료들과 10년도 넘게 소복소복 사모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을 보며 감탄하는 대표님에게 각자 책장 속 책들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는 나의 오래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자 타고난 방송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기획이 급물살을 타며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뽑혀 펀딩을 받고 편성까지 되고 나니 이야기를 시작한 인간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말아 생각지도 않게 방송에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돌아보면 데이터 속 사람의 마음을 읽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감히 시작하려는 순간 내가 명확히 안 것은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무지를 깨닫고 생각이 깊은 분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 모셔오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을 따라 읽는 것이었다. 크지 않은 사무실 곳곳에 책장을 만들어 놓은 후 각자가 읽고 싶은 책들의 제목을 모아 롤링페이퍼를 돌리고 찬성이 많은 순서대로 상위 50%의 책들을 꾸준히 사모았다. 출발은 미약했지만 하나둘 떠듬거리며 책 속 단어를 따라 외우다 어느덧 저자들의 생각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허기짐에서 시작한 일이 다른 삶으로의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다음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조직에 가면 바로 책장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책장이 없는 경우도 많았고, 있어도 꽂혀 있는 책들의 종류가 기술이나 방법론에 머무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얼마나 최근의 책들이 꽂혀 있는지에 따라 그 조직의 지향점뿐 아니라 현행화의 정도까지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큰 회사에 회사들의 책장을 보여주는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보려도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영민한 기획자를 만나 이제야 좋은 프로그램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생각의 지층을 보여주는 창구로서 책장은 내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더 큰 효용을 갖는다. 책장 속 현인들의 축적되고 정제된 생각이 나의 말보다 의미를 깊게 전달해주는 이유는 나의 표현이 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나의 이해가 한정적이라 책 속 숨겨진 보물들을 채 못 캤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관심의 변천을 나누는 것이 더 너르고 다양한 갈래들을 건네줄 수 있기에 그 가능성과 힘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넘겨받은 책장 속 새로운 지혜를 얻은 이들과 나누는 대화로 얻는 희열은 기능적인 효용을 넘어 삶을 바꾸는 경험으로 체득되어질 수 있기에, 아침마다 읽는 책들을 보여주는 #모닝챌린지도 좋지만 웅크리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지금,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시작점으로 마음의 흔적인 각자의 책장을 펼쳐서 나누는 온라인 책들이를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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