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내내 눈치를 봤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면서 창밖을 힐끔힐끔 보다가, 비가 좀 잦아들었다 싶으면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을 놓치면 당분간 기회는 없어!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뛸 시간이다.
나의 첫 러닝 기록은 201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10kg이 불어서 돌아온 바람에 푹푹 찌는 여름 더위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달리기라는 건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널 때나 지하철을 잡아 탈 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미국에 가보니 39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사람들이 길에서 러닝을 했다. 달리기를 단독으로 할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 게 그때다. 뛰는 게… 재미있나?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다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미국에서 본 대로 나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괜히 기분이 들떴다.
자신만만했던 태도가 무색하게 며칠 하다 말았다. 천천히 뛰는데도 숨이 턱을 넘어 코까지 차올랐다. 어렸을 땐 동네에서 달리기 1등 하는 여자애였는데 왜 이렇게 됐지. 거의 1년이 지난 2013년 5월에야 그다음 러닝이 이어진다. 상쾌하고, 해가 반짝이고, 가벼운 바람이 부는데, 불현듯 러닝이 하고 싶어졌다. 평균 속도가 킬로미터당 7분대로 들어왔다. 쉬지 않고 7km를 넘게 뛰기도 했다. 그해에는 가을까지 부지런히 뛰었다. 제일 열심히 뛰었던 건 2014년이고, 그때는 2월부터 8월까지 거의 매주 뛰었다. 2014년 여름쯤에는 5km를 킬로미터당 6분대로 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올해는 6월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교환학생을 갔다왔을 때보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4월부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재미없는 근력운동만 하기보다는 밖에서 뛰고 싶었다. 러닝머신으로는 도저히 맛이 안 산단 말이지. 똑같은 달리기라도 러닝머신에서 뛰는 건 세상에서 제일 재미가 없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개천을 뛰는 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내 발로 땅을 박차는 느낌, 계속 변하는 주변 환경, 미세하게 조정이 가능한 속도.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인 건 내가 내 몸을 온전하게 들어서 놓는다는 그 감각이다.
달리기는 내가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 경계를 뚜렷하게 알려준다. 내가 이끌고 다녀야 하는 무게를 정확하게 각인시킨다. 코어 근육이 얼마나 단단해져 있는지,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의 상태는 어떤지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내가 발을 들어서 옮기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계속 뛰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결코 계속 뛸 수 없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나는 지금 당장 멈출 수도 있지만 계속 뛸 수도 있다. 심장이 뛰고 숨이 차서 돌아버릴 것 같을 때 오로지 나만이 느리게 뛸지 걸을지 멈출지 결정할 수 있다.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 역시. 매번 나를 새롭게 알아가고 동네의 풍경을 알아간다. 내가 나를 들고 뛰기. 왠지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