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차량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OO 요양병원’을 입력했다. 동생에게 연락이 온 건 일주일 전이었다. “아버지가 우리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신대.”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는 아버지가 코로나19로 병원에서 몇달째 면회를 불허하자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줄 알고 걱정한다는 소식이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의 치매 진행이 더 빨라졌고 결국 병원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면회를 허락하기로 했다. 그렇게 P가 아버지를 만나러 나선 참이었다.
요양병원에 도착하자마자 P는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했다. 그리고 비누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쓴 후, 다시 꼼꼼히 손 소독제를 발랐다. 코로나19는 노인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P는 아버지를 위해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다. 그 후 임시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대기실에 무심히 켜진 TV에서 주말 연속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드라마 속배경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 등장인물 중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런 풍경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P는 이제는 잊힌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양 화면 속 광경이 새삼스러웠다.
요양보호사가 아버지를 부축하며 면회실로 들어왔다. 전보다 많이 야위었는지 아버지 얼굴을 덮은 마스크가 훨씬 크게보였다.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저예요.” 아버지는 별 반응이 없었다. 마스크를 쓴 탓에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면회를 자주 오지 않아서 토라진 걸까.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아버지, 자주 못 와서 죄송해요.” P는 아버지에게 당신을 실망하게 만든 코로나19를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영양가 없는 말들만 하릴없는 가운데 P는 차라리 마스크를 벗고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는 편이 백 마디 말보다 아버지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소멸할 뿐인 말들을 곁에 있던 요양보호사가 아버지 대신 주워섬겼다.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낀 채로 만나서인지 면회가 끝나도 왔다 간 사람이 누구였는지 더 잘 잊으세요. 그렇다고 마스크를 벗고 만나게 할 수는 없으니…. 우리끼리는 코로나 이산가족이라고 불러요.” 그 말을 들으니 P는 마스크를 벗을까 했던 마음이 쑥 들어갔다. 마스크 너머 아버지의 눈동자가 P를 응시한 채 껌뻑거렸다.
아버지의 오해를 풀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채로 P는 면회를 끝냈다. 주차장 근처 장례식장 입구에 마스크를 쓴 한 무리의 조문객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마스크를 벗고서 조문하는 것이 예의인지 아닌지 아니면 마스크를 쓰고 상주를 배려하는 걸 우선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P는 무엇이 진정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일이었을지 조금은 혼란스러운채로 병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