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나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 H와 종종 하교를 함께하곤 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진입로를 지나 학교 아래에 다다랐을 때 빨간 소형차를 보았다. “혹시 너희 2학년이니?” 차 앞에 서 있던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물었다.“네.” “나, 6반 제일이 엄마인데, 6반은 아직 안 끝났니?” 6반이라면 우리 옆 반이었다. 우리 반이 종례가 늦게 끝나서 하교 때 이미 그 반은 아무도 없었다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집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시내에 있는 학원에 갈 거라고 하자, “제일이 데리러 온 건데, 제일이는 먼저 갔나 보네. 대신 아줌마가 너희들 학원까지 태워줄게”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 올랐다. 제일이라는 친구의 존재를 그날 처음 알았다. 학원까지 가면서 아주머니는 우리의 이름을 물었고,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아들 제일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다. 사는 곳이며, 아들이 나온 초등학교, 그가 가장 잘하는 과목까지.
그날 이후 오가다 가끔, 아니면 반 대항 체육 시합이 있을 때마다 제일이를 마주치곤 했다. 제일이는 한눈에 봐도 여느 아이들과는 달랐다. 크지 않은 체구에 하얀 얼굴의 조용한 아이였지만, 반에서 1, 2등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캐릭터 탓일지는 몰라도 왠지 딱히 더 아는 체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보냈다. 그리고 개학 후 며칠 뒤 제일이 소식이 우리 반에도 전해졌다. 담임선생님은 짧게 제일이가 죽었다는 사실만을 알렸지만, 어렴풋이 제일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더는 사연을 궁금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열다섯살 아이들에게 자살이란 그 단어만으로도 삼키기엔 너무 큰 단어였던 걸까, 이후로 그 사실은 조용했던 아이의 존재처럼 그렇게 우리들 사이에서 희미해졌다.
제일이 어머니를 다시 마주한 건 학교 근처 사거리에서였다. 횡단보도에서 혼자 신호를 기다리는데 제일이 어머니가 우리가 얻어 탔던 그 차 운전석에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제일이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횡단보도를 지나갔다.
학원에서 H를 만났고 제일이 어머니를 보았다고 했다. 친구는 나에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냐고 물었다. 난 머뭇거렸다. 인사를 하지 못했으니까. 한낱 변명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4월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다시 길에서 어머니의 그 눈빛을 마주했을 때 선뜻 인사를 건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신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아주머니가 전해주셨던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 또한 기억하고 있다고 마음으로나마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