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 조선어로 쓰이는 몇 안 남은 문예지인 <문장>에 ‘문학의 제諸 문제’라는 흥미로운 좌담 기록이 실린다. 대표적인 조선 문인들이 총출동한 이 좌담에서 ‘문학상’은 뜨거운 화두였다. 일본 문학계가 ‘조선예술상’을 제정해 조선문학을 오키나와문학·규슈문학 같은 ‘지방문학’으로 흡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태준이 “상의 명예가 받는 측에 있는지 주는 측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유행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자, 시인 김기림은 “주는 측으로 먼저 명예도 있고 채산採算도 있겠지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평론가 임화는 “타는 사람으로도 창피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소설가 박태원이 “아이러니”라고 지적한 이 상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쪽에서는 받는다는 말두 없는데 제 맘대로 준다고 정해놓고 떠든다는 것은 좀 우스워”라는 김기림의 일침,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명백히 냉소와 저항의 의미를 담은 일동의 “웃음소리笑聲”로 끝맺는다. 주는 측의 “명예”와 “채산”때문에 받는 측으로 하여금 “우습다”는 자괴감이 들게 하는 종류의 상. 그럼에도 이 불합리한 상황을 거스를 수 없어 그저 ‘웃어’넘겨야 했던 순간들.
최근 문학사상사가 주최해온 이상문학상이 수상자들의 출판권 및 발행권을 제한하는 등 부당한 조항들을 시행해왔고, 이를 “한 직원의 실수”라는 거짓말로 무마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작가들은 즉각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소설가 윤이형은 당시 무지로 인해 부당한 조항을 바로잡지 못한 점, 수상으로 인해 집필과 강의 및 광고 기회를 얻는 등 자신이 그 부당한 상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반성하며 당분간 작가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동료들 또한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운동에 동참하며 뜻을 모았다.
기성문단의 반응은 놀랍다. 작가들이 “예민”하다며 “그냥 덮으면” 된다거나, 이를 “기득권”을 가진 작가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불거진 문제로 규정하고, 다른 사회문제에도 목소리를 낼지 궁금하다며 오히려 작가들의 윤리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의견’들이야말로 한국 문단의 적폐다. 윤이형은 이것이 비단 이상문학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2016년부터 성폭력 가해자들이 점유한 문학권력을 탈환하기 위한 여성 문인들과 젊은 독자들의 줄기찬 노력이 좌절돼온 시간과 관련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나쁜 일에 연루된다’는 무력감을 학습 시켜온 이 나쁜 전통.
시인 이상은 제국의 검열에 의해 무참히 거세되는 자신의 시적 의지를 통탄하며 이렇게 썼다. “내 팔이 면도칼을 든 채로 끊어져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무엇에 몹시 위협당하는 것처럼 새파랗다/ 이렇게 하여 잃어버린 내 두 개의 팔을 나는 촉대燭臺 세음으로 내 방 안에 장식하여 놓았다.”(<오감도 시 제13호>) 이상문학상이 배반한 이상의 정신은 윤이형이 쓰기를 거부한 문장들, ‘온라인’이라는 형체 없는 지면에 모자이크처럼 덧대지는 젊은 작가들의 다짐 속에, 가까스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