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의 첫 업무는 “n포털에 ‘실내 포차’를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블로그 검색결과 1페이지 안에 ‘더진포차’ 맛집 후기가 노출”되게 하는 것이었다. 기계적으로 도배된 광고들은 더이상 소비자들을 매혹할 수 없기에 현대 마케팅 문법은 진화를 거듭한다. 구체적 개성을 지닌 가상인물의 블로그를 꾸며 자연스럽게 광고를 노출하는 것. 시간과 열정, 재능이 요구되는 일이다. 입사동기 예린이 “이 일이 좋아지지가 않아요”라며 낙담할 때, ‘프로다움’으로 무장한 경진은 “일을 못하는 거겠지”라며 우월감에 젖었다.
다만,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경진이 운영하는 가상인물 ‘채털리 부인’의 블로그로 쪽지를 보내왔을 때, 경진의 두손은 싸늘하게 식었다.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한 아이는 죽고, 남은 아이는 평생 산소 공급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 ‘채털리 부인님께도 무슨 일 있다면 연락 달라’는 염려의 쪽지. 그것은 경진이 2년 전에 작성한, 기억도 나지 않는 후기를 말하고 있었다. 경진은 떠올렸다. ‘내가 쓴 후기를 보고 그 제품을 구매했는지 어떻게 증명해?’ 경진이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도 그 가습기살균제 후기를 썼다’고 말했을 때,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고 경진은 “서운”했다. 그리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경제구나.”
경진은 이 일을 26개월간 지속했다. 전혀 “로직”을 알 수 없던 n포털이 “검색 알고리즘” 방식을 대폭 바꾸자, 그 “콘텐츠 생태계”에 최적화된 마케팅 “업계”가 “통째로 망해버”린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예린을 우연히 만났을 때, 경진은 말하고 싶었다. “그땐 몰랐는데, 나도 그렇게 적성에 맞았던 것 같진 않아요.”
이상은 김세희 단편소설 <가만한 나날>의 줄거리다. 작가가 “화자에게 너무 가혹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고 술회한 이 작품이 요 며칠 계속 생각났다. 악플, 여혐, 기획사, 언론 등 온갖 키워드들이 부유하는 느닷없고 가차 없는 죽음. 책임 소재에 대한 무례하고 불철저한 추론. 그런데 애초에 이런 ‘말’들의 낭비와 탕진이 곧 돈이 되는 이 “생태계”란 무엇인가. 직원들의 침묵에 경진이 느껴야 할 감정은 진정 “서운함”인가. 가장 “가혹한 경험”을 한 것은 정녕 “화자”인가.
온라인 지면에 기고하는 ‘프로’ 글쟁이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그게 조리돌려지는 상황은 생각지 못했다. ‘여혐’에 대해 한 뉴스 매체에 기고한 내 글의 단락마다 여성성형과 (유사)성매매 광고가 삽입된 걸 봤을 때, ‘참담’했지만 항의하지 않았다. ‘불쾌한’ 광고가 없는 ‘클린’ 뉴스를 원한다면 별도의 돈을 내게 하는 매체도 있다고 들었다. 그저 지나쳤던 것들이 비로소 아연하다. ‘프로’, ‘경제’, ‘불쾌’, ‘클린’ 같은 말들로 포장돼 돌아가는 이 생태계가 바로 우리의 “가만한 나날”이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