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철이라는 음악가를 좋아한다. 처음 그의 음악을 알게 된 것은 밴드 ‘불독맨션’ 때문이었다. 김현철이 쓰고 부른 불후의 명곡 <춘천가는 기차>를 리메이크한, 원곡보다 좀더 경쾌한 멜로디의 기타 연주와 평소에는 사투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주는 대비를 좋아했다. 카세트테이프가 서서히 사라졌지만 음반 가게는 아직 번창하던 시절, 불독맨션의 음악은 항상 가까이 있었다. 요즘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음반은 2016년 11월 발매한 5집 《늦어도 가을에는》이다. 첫곡 <가을>은 잔잔하다. 계절이 바뀔 때 으레 하는 행동으로 새로 오는 계절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그는 목소리와 클래식기타 선율만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줄 안다. 앨범의 세 번째 곡 <출렁이는 달빛>을 들으면, 연휴가 시작될 때 충동적으로 걸었던 서울의 밤과 새벽의 텅 빈 도로가 떠오른다. ‘출렁이는 달빛 아래서/ 일렁이는 마음을 본다/ 밀려오는 바람 타고/ 끝도 없이 나부끼는 마음/ 하염없이 헤매고 있는/ 슬픈 사랑을 거두어 안고/ 내 님이 보일 것 같은/ 밤의 끝으로 나는 떠나네.’ 며칠간 흐린 구름이 가시고, 도시 안 칼칼한 빌딩 숲 위로 곧게 펼친 하늘은 빌딩가 속에서 어떤 붓과 펜도 그리기 어려운 자연으로서, 구름으로서 흥얼흥얼 가을을 노래한다.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그 자체로 흐릿한 기시감처럼 다가오는 감흥 넘친 시절의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