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한 대학에서 일주일에 두번 시간강사로 일했다.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수업이라서 꽤 긴장하며 수업에 임했다. 봄기운이 가득했던 3월, 장미 넝쿨이 만발한 담을 따라 걷던 5월의 출근길은 행복했다. 햇볕이 공격적으로 따가워질 즈음, 내 근무환경도 따가워졌다. 조교는 종강을 앞두고 시간강사 해촉문서를 보내왔다. 내가 아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편에. ‘기한 내에 수업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학교에 감사 나온다’라는 경고와 함께. 이 예정된 ‘해촉’이 왜 그렇게까지 냉담하고 무례해야 했는지 아직도 영문을 모른다. 하지만 ‘냉담’과 ‘무례’가 ‘위법’은 아니므로, 나는 이 일을 그저 내 마음의 법정에 고발했다.
이후 일은, 현재 강사법 통과와 함께 많은 시간강사들이 겪은 그대로다. 강사 공채 마감을 불과 하루 혹은 몇 시간 앞두고 교수에게 ‘친히’ 전화가 온다. 다음 학기 강사 공채에 지원하라고 권유한다. ‘공채’인데 이런 전화가 왜 오는지 의아하지만 ‘난 내정자인가?’ 싶어 부랴부랴 서류를 꾸며 지원한다. 누군가는 강사로 선발되고, 누군가는 이유를 모른 채 탈락한다. 어떤 학과들은 ‘강사 지원’을 하라고 후보자들에게 연락을 돌려놓고는 ‘적임자 없음’을 이유로 그 누구도 뽑지 않은 채 추가모집을 거듭한다.
모멸의 포인트는 ‘무례한 해고, 그럼에도 밸도 없이 또(!) 공채에 지원함, 지원을 했는데 심지어 떨어짐’ 같은 사실에 있지 않다. 포인트는 내가 그간 어디서도 이 이야기를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게 정당한 문제제기일지, 그저 ‘원한’일지 한참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존엄을 지키며 침묵을 택한 기품 있는 지성인’도 됐다가, ‘더 불투명해질 미래를 계산하는 비겁한 소시민’도 됐다. 내가 이렇게 ‘드라마 퀸’일 줄 나도 몰랐다. 더 부끄러운 건, 내가 이 ‘마음의 풍경’을 지면에 재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건 며칠 전 읽은 신문 기사들 때문이라는 점이다. 폭우에 빗물펌프장 점검을 강요받고 끝내 숨진 작업자들, 1평도 안 되는 좁은 경비실에 기어이 에어컨 달기를 거절했다는 한 아파트 단지, 폭염에 임시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숨을 거둔 어느 대학의 청소노동자. 이 수많은 ‘비정규’의 삶/죽음이 새삼 ‘사건화’되는 걸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그 수많은 죽음들에 “응답”하지 못했음은 물론, 나 역시 ‘노동 비극’의 주인공이면서 그 “고립의 구조”를 외면한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고작 이 정도의 인간”(김대성, <대피소의 문학>)임을, 그제야 알았다. 내 마음의 디스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