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인가 봐요?” “아, 네.” 지훈이 망설이자 은영이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고, 올가을에 식 올려요.” “그럼 신축 중심으로 깔끔한 집 보여드려야겠네.” 부동산 사장은 수첩을 덮고 다른 부동산에 전화를 돌렸다. 물건이 있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신혼부부가 살 깨끗한’ 집이라는 수식어가 꼭 들어갔다.
“넌 아닌 티를 그렇게 내야 되니? 누가 보면 이혼하는 부부인 줄 알겠다.” 부동산을 나와 은영이 지훈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누나. 왠지 사기 치는 것 같아서요.” 지훈은 선배 은영과 신혼부부 행세를 하는 게 아직도 영 멋쩍었다. 비혼 1인 가구. 이것 말고 지훈과 은영에게 공통점은 하나 더 있었다. 둘 다 거주지의 임대차 만기일이 비슷했다. 자취 10년차인 지훈은 평균 2년마다 이사를 했다. 서울 중심에서 점점 외곽으로 벗어나는 형세가 이사라기보다는 추방에 가까웠다. 사정은 은영도 뻔했다.
은영이 중심가 오피스텔을 알아볼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임대차 계약서를 쓸 때까지는 익명의 누군가일 뿐이었다. 한적한 변두리의 다세대 빌라가 밀집한 주택가로 이사의 여정이 거듭될수록 집주인과 중개인의 질문은 점차 늘어났다. 여성 혼자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건 여러 눈길과 불편이 따랐다. 간담이 서늘해질 일들도 많았다. 집을 보러 갔더니 혼자 사는 남자가 헐벗은 옷차림을 하고 있더라는 건 차라리 웃으며 얘기라도 할 수 있지. 도시를 전전하며 쌓이는 건 빚뿐만이 아니다.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덩달아 쌓인다.
지훈은 나이가 흔히 말하는 노총각에 가까워지자 중개인이 자신에게 소개하는 집이 달라짐을 느꼈다. 남자 혼자 살 집이라고 하면 일단 가장 안 나가는 곳부터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남자 손님에게 집의 채광이나 위생, 입지 등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임대인이나 중개인에게 독거 남성은 환영받지 못했다. 비흡연자에다가 식물도 잘 키우는 지훈이지만 이를 증명할 길은 없었다.
서로 그런 불평을 나누던 중에 두 사람은 이른바 부동산용 신혼부부로 각자의 집을 함께 알아보기로 합의했다. 딱히 연기할 것도 없이 같이 다니기만 해도 중개소에선 별 말 없이 둘을 부부로 여겼다. 신혼부부로 감지가 되면 중개인들은 무리해서라도 일단 근사한 집부터 소개했다. 지훈은 내림차순에서 오름차순 정렬로 바뀐 기분이 들었다. 은영에겐 이 도시에 여성이 혼자 살 집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살 집을 보러 가는 평범한 일이 되었다. “어때요, 밝고 좋죠?”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지훈의 집을 확정했다. 이제 은영의 집을 알아보러 다닐 차례다.
2년 뒤. 임대인과 부동산 중개인이 지훈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며 물었다. “신혼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부인은 안 보이시네.” 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이혼했어요.” 이에 중개인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래요, 요즘 뭐 다들 많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