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마도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고 일주일 남짓 후 <씨네21>에 실리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결과에 울고 웃느라 이 깜깜이 기간 동안 있었던 여론조사 루머에 마음 졸인 사실은 다 잊어버릴 테지만, 어쨌든 나와 내 주변은 무엇이 전략이고 무엇이 팩트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각종 뉴스와 ‘카더라’를 검색하며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2017년 대선을 그동안 겪었던 역대 대선 중 가장 건강한 선거로 기억할 것 같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사표 논란’이다. 군소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가 사표냐 소신 투표냐 ‘논란’이 된 선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전의 선거는 언제나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구도가 잡혔고 그 안에서 군소 후보는 안팎으로 단일화 요구를 받아야 했다. 그들에게 표를 줄 수 있는 환경 자체도 마련되지 못했던 과거가 그리 멀지 않았음은 심상정 후보가 선거 초반 ‘완주하겠느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완주를 넘어 그에게 가는 표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공론화되는 것은 분명 우리가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되도록 빨리 겪어야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과정이었다. 물론 지난 10년간 경험했듯 퇴보 또한 언제든 올 수 있지만, 이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우린 다음 선거 때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 결정 후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니 비현실적이었는데 다이내믹 코리아에선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 레이스를 급작스레 맞다보니 포장되지 않은 민낯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그 결정적 순간이 바른정당의 대규모 탈당 사태였다고 본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또다시 부정하여 결국 자기 자리로 돌아간 그들의 추태는 온갖 미사여구와 정치공학에 가려져 있던 한국 보수의 진면목 그 자체였다. 그런 와중에 재밌는 것은 그들을 가장 신랄하고 정확하게 비판하는 주체가 바른정당이었다는 사실. 반성과 책임은커녕 국민을 기만하는 자유한국당에게 유승민 후보는 ‘시간이 문제지 자유한국당은 소멸될 것’이라는 명쾌한, 누군가 해야했던 꼭 필요한 진단을 내렸다. 진보정당도 하지 못했던 그 말이 보수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불미스러운 일이었던 그의 딸 유담씨의 성희롱 사건 후(유담씨는 성희롱 피해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처음으로 일간베스트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사이트를 흔들리게 만든 주체도 바른정당이었던 걸 보면 이게 그 결자해지란 것인가 싶다. 보수의 손으로 보수의 매듭을 푸는 모습을 앞으로도 더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낯선 보수는 반가운 행보를 보여줬다. 그리고 혹시 우리도 앞으로 진짜 보수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기대도 품게 해줬다.
많은 긍정적인 시그널이 있었던 첫 장미대선이었지만 선거는 결국 승자의 게임이다. 1표라도 더 가져가는 다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니, 민주주의 제도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인 것이다. 투표가 끝난 후 매번 첫 번째 화두가 ‘통합’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차기 정부의 첫 메시지가 통합이 될지 청산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둘 모두 정책으로 해결되는 숙제는 아니다. 정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새로운 정부에 리더십을 요구하기보다 국민들이 파트너십을 가지는 게 더 쉽고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나는 ‘디스토피아로부터’에서 하차한다.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난다고 생각하며 임해왔고, 영화와 달리 시의성을 공유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작업이었다. 소중한 지면을 나눠줬던 <씨네21>과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닿았을 쯤엔 그동안 비상식과 비정상이 난무했던 한국이 좀더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회에 가까워져 있길. 우리에게 그럴 의지가 있는 대통령이 생겼길 빈다.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